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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2>

이사는 했고.....

by 자 작 나 무 2022. 2. 27.

2월 27일

지난 수요일 저녁, 토요일 오후

두 번 용달차를 이용해서 원룸으로 이사했다. 처음엔 택배로 몇 상자 먼저 보내고 남은 짐은 주말에 친구 차에 실어서 이사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애매하게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멋쩍어서 용달차를 이용하니 생각보다 편했다.

 

한 번에 다 싸서 왔어도 충분했는데 정말 적은 짐만 가져가겠다고 마음먹어서 대충 짐을 꾸린 탓에 막상 이사하고 보니 뭔지 모르게 아쉬웠다. 금요일 오후 늦게 집에 도착해서 이틀 비운 집에 보일러 돌리고 온풍기까지 돌려도 집은 너무나 썰렁했다.

 

그때 알았다. 내가 얼마나 오래 익숙해진 불편함을 견디며 살았던 것인지. 원룸은 공간이 좁기도 하고 옆집이 닭장처럼 있으니 보일러를 조금만 돌려도 상당히 따뜻하다. 이틀 원룸에서 자고 살던 집에 와서는 하룻밤 새 감기에 걸렸다.

 

콧물이 줄줄 흐르고 새벽에 몇 번이나 추워서 잠 깨고 뒤척거려졌다.

 

익숙해진 불편함을 견디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좁은 원룸에 더 가져갈 짐은 옷가지와  그냥 두고 가면 죽을 게 뻔한 테이블 야자 화분과 칼랑코에 화분. 삼천 원에 마트에서 사서 들고 온 작은 테이블 야자가 꽤 풍성하게 자랐는데 그간 관리를 잘못해서 꽤 잎이 시들어졌다. 그래도 살겠다고 새잎을 올리는데 그걸 두고 그냥 가자니 마음이 불편했다.

 

매주 물 주러 오기엔 시외버스를 두 번 환승하고 터미널에서 먼 우리 집까지 엊그제 가보니 2시간 반에서 세 시간가량 걸렸다. 승용차로 1시간 남짓이면 되는 거리인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그렇게나 시간이 걸린다. 그걸 매번 감수하고 집에 다녀오기엔 힘들 것 같아서 차라리 용달차를 한 번 더 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친구와 약속 있다는 딸에게 애원하고 또 애원해서 집으로 불러들였다. 이왕에 차를 쓰니까 뭐든 더 싣고 갈 것을 챙기고 그걸 아래층에 내려놓는 것을 내 몸 상태로는 할 수가 없으니까.

 

우여곡절 끝에 두 번만에 얼추 필요한 짐을 다 들고 왔다.

 

아주 작은 베란다에 좀 시들해진 테이블 야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원룸 작은 거실에 있던 TV는 치우고 그 자리에 캡슐커피 머신과 커피 드리퍼 등등을 올려놓았다. 어수선하게 널려있는 짐 상자는 어떻게 분류하여 정리할지 지금은 대책이 생기지 않을 만큼 피곤하다.

 

오늘은 스위치 끄고 좀 더 쉬고 내일 정리하고 출근할 준비도 해야 하고..... 생각보다 남은 시간은 빠듯하다.

 

*

출퇴근용 경차를 사고 싶다고 친구에게 말했더니 늦게 연락이 왔다. 원룸을 구했지만 차가 있으면 편하긴 하겠다. 원룸 생활로 늘어난 월세를 감당하기도 벅찬데 차를 사면 유지비가 일 없이 나갈 게 뻔하니 차 사는 건 딸도 반대했건만 사람 많은 차에 함께 갇히듯 이동하는 것이 신경 쓰여서 차를 사고 싶다.

 

몇 년식에 몇 키로 탔다고 알려주는데 그게 얼마나 적당한지 물어보거나 의논할 상대가 없다. 그 흔한 남사친이라는 존재라도 한 명 있으면 이럴 때 전화해서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여자 친구들은 대체로 차에 관해선 아는 바가 없으니 물어봐도 모른다. 오늘 차를 알아봐 준 친구도 숫자만 알려주고 자긴 모른단다.

 

올해 남은 운은 거기에 써야 하나? 아무래도 남자 친구가 있어야겠다. 

 

집에서 쓰던 그릇은 깨지면 좀 아까운 비싼 그릇이어서 인터넷으로 저렴한 그릇을 한 세트 샀더니 딸이 잔소리했다. 혼자서 뭘 해먹을 거냐고 그냥 사 먹으란다. 괘씸해서 밥 차려서 먹었다.

 

밥상도 책상도 없으니 겸용으로 뭔가 하나 사야겠다. 의자는 집에서 직접 만든 것을 들고 와서 겸용으로 쓰면 되겠는데 올려놓고 바닥에 앉아보니 이건 높아서 안 되겠다. 

 

*

원두 갈아서 커피를 내리다보니 문득 생각난다. 이 원두를 갖다 주고 간 친구가 아프다는데 고생 덜하고 얼른 나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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