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흐르는 섬 <2020~2024>/<2022>

3월 6일

by 자 작 나 무 2022. 3. 6.

새로 주문해서 설치한 암막 블라인드를 내려놓고 종일 어두운 방과 끈 떨어져서 애매하게 블라인드가 움직이지 않는 작은 거실을 오가며 빈둥거렸다.

 

제대로 돌보지도 않으면서 폐허가 된 집에서 구출해 온 테이블 야자와 칼란코에 화분을 나란히 베란다에 내놓고 둘이 알아서 살겠거니 내버려 뒀다. 물 주면서 파인 부분에 채워줄 흙 한 봉지를 샀는데 그걸 언제 하려는지 그냥 내버려 뒀다.

 

아침에 눈 뜨니 갑자기 기침이 좀 나길래 계속 밤잠을 설치고 새벽에 깨서 잠을 푹 못 잔 것이 문제인가 싶어서 다시 잠을 청했다. 아침잠은 역시 달다. 출근해야 하는 날에는 꿈꿀 수 없으니 일요일이라는 것을 즐기는 방법 중에 가장 달달한 것이 아침잠을 더 자는 거다.

 

원룸이 좁아서 따뜻하기는 한데 공기 질이 좋지 않은지 환기해도 평소와 다른 알레르기 반응이 자꾸 생긴다. 근처에 화력발전소가 있어서 공기 질은 아마도 최악이지 싶다.

 

통영과 비슷한 바닷가 마을이라고 생각했는데 화력발전소를 생각 못 하고 이곳으로 오기로 한 것은 실수였다. 합천, 하동, 삼천포 중에 바쁜 딸과 그나마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정했는데 오래 살 곳은 못 되는 것 같다.

 

이 정도 좁은 집도 사는 데 큰 불편은 없는데 옷 욕심 많은 내게는 옷방이 하나 필요하다. 플라스틱 상자에 담아놓은 옷을 다 입지도 않을 텐데 왜 저렇게 많이 싸 왔을까 싶다. 조만간에 겨울에 입던 니트를 가져다 놓으러 집에 한 번은 다녀와야겠다.

 

가져올 때는 어차피 여름 지나고 찬바람 나면 또 옷 가지러 가야 할 것이 번거롭다고 생각해서 챙겨 왔는데 집이 좁아서 옷을 둘 곳이 마땅치 않다. 철 지나면 다 정리해서 어떻든 이곳 짐을 줄이긴 해야겠다.

 

쓸데없는 것에 넘치는구나. 막상 입으려고 하면 손이 가는 옷도 없는데.

 

주말에 쉰다는 게 이렇게 지쳐서 빈둥거리는 것이라니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앞으로 움직일만하면 주말엔 여행을 다녀야겠다. 이렇게 혼자 외롭게 살다가 늙어 죽을 수는 없다고!

 

그런데 혼자 다니는 것도 만만찮게 우울해.

 

그래도 꽃놀이는 가야지. 매화, 벚꽃, 배꽃까지 다 볼 수는 없어도 계획은 세워봐야지. 이런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금세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은 답답함에 허우적거리게 된다.

 

레이싱 게임을 즐긴다는 누군가의 소개로 유튜브 몇 개 보고 나니까 가당찮게 모션 하우스 갖추고 게임 하고 싶어졌다. 그럴 힘이나 돈 있으면 열심히 다리 힘 빠지기 전에 걸어 다녀야지. 여태 통영을 기점으로 여기저기 여행 다닐 계획을 세웠는데 앞으론 다른 도시로 먼저 이동해서 거기서부터 움직여야 하니까 동선이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다.

 

분명히 아가베 시럽을 산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찬장을 열어보니 메이플 시럽을 사놓은 거다. 블루베리 핫케이크 만들 때 마른 블루베리를 아가베 시럽에 잠시 재웠다가 넣어서 구우니 맛이 좀 나은 것 같아서 집에서 하던 대로 하겠다고 온라인 마트에서 장 보면서 분명히 아가베 시럽을 산 것 같았는데..... 메이플 시럽이다.

 

어쩐지 작은 게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지. 집에 두고 온 자잘한 것이 새삼 아쉽다. 스테이크 썰어 먹을 일은 없을 거라고 나이프도 놔두고 온 것을 오늘 또 후회했다. 딸이 쓸데없이 짐 많이 가져간다고 눈치 해서 이것저것 빼놓고 왔는데 주방에서 쓰던 것은 자주 쓰지 않아도 다 필요한 거였다. 

 

핫케이크를 손으로 뜯어먹으려다가 과도로 잘랐다. 과도도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식칼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막상 와보니 식칼로 과일 깎기는 싫더라. 말은 대충 살겠다고 해놓고 그게 그런 게 아니란 거지.

 

*

고르고 골라서 산 밥상 겸 책상 두 번째 주문한 것까지 취소했다. 그 색상이 없으면서 인터넷 장에는 왜 내놨는지 며칠씩 실컷 기다리다가 취소 처리해달라는 판매자의 연락을 받고 취소하고, 또 골라놓은 것은 며칠이 지나도 물건 준비가 안 된다는 거다. 결국 세 번째 결재한 물건은 과연 이번 달 안에 받아볼 수는 있을까?

 

집에 그 흔하디흔한 탁자를 들고 오기엔 번거롭다고 그냥 왔더니 앉아서 밥 먹을 수 있는 높이의 기물이 한 가지도 없다. 낮은 서랍장 위에 올려놓고 정말 애매한 자세로 밥 먹는 것도 내 기분을 자꾸만 가라앉게 만드는 원인 중의 하나일 수 있다. 

 

이렇게 살면서 백 살 넘을 때까지 어떻게 견딜까? 딸내미는 이제 저만의 인생을 살 것이니 내가 살아남을 길은 빨리 같이 의지하고 살 누군가를 찾아내는 거다.  

 

하루살이처럼 살지 말아야 하는데 마음이 조금 불안정해서 컨디션이 좋지는 않다. 마음을 일으키기 위해 뭔가 해야 한다. 기분 좋아지는 생각.

'흐르는 섬 <2020~2024> > <20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런 게.....  (0) 2022.03.10
여전히 세상은 뜨겁고 불타는 곳이다.  (0) 2022.03.06
비위도 좋으셔~  (0) 2022.03.05
사전 투표  (0) 2022.03.05
2월 28일  (0) 2022.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