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 산불 나서 걱정됐는데......
오늘은 비를 핑계로 김치전이 먹고 싶었다. 익은 김치는 있는데 밀가루, 부침가루 그런 종류가 전혀 없다. 부침가루만 한 봉지 있었어도...... 거기다 오징어도 한 마리 슥슥 잘라 넣고 부치면 얼마나 맛있을까?
뭔가 기름에 부쳐 먹고 싶은데 가루는 핫케이크 가루뿐이다. 블루베리 말린 거 듬뿍 넣고 핫케이크라도 부쳐 먹어야겠다. 달걀을 하나 깨고 우유를 꺼내 보니 냉장고 온도에 문제가 있는지 발효되고 있다. 달걀 깬 것에 우유를 조금 부은 게 화근이다.
아까운 달걀 하나를 버리고 새 달걀을 깬 뒤에 냉장고에 있던 떠먹는 요구르트를 부어서 반죽했다. 약간 새콤한 맛도 날 것이고, 단맛도 날 것이니 블루베리는 그냥 넣으면 되겠다.
마침 쉰 김치도 있으니 냉장고에 조금씩 남은 채소를 총동원해서 볶아보기로 했다. 총각김치에 딸려온 퍼런 줄기가 쉬어서 손이 잘 가지 않아서 그 부분도 다 잘라서 넣고 볶았더니 꽤 양이 많다.
김치 볶은 것을 조금 덜어내고 밥 한 공기 넣어서 볶았더니 맛이 꽤 괜찮다. 김치 볶을 때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쓰면 좋은데 그런 게 있을 리 있나. 우리 집 양념장 넣은 장엔 다 있는데...... 또 아쉽다.
이래서 대충 사는 게 쉬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되도록 갖출 것은 갖추고 사는 게 익숙해진 터라 없는 것을 건너뛰고 대충 산다는 건 어쩐지 불편하다.
곧장 쓱배송으로 내일 도착할 물건에 추가 주문했다. 참기름, 고춧가루, 부침가루, 튀김가루까지. 조만간에 마트에 들러서 가격이 괜찮으면 가지를 사다가 튀겨 먹어야겠다. 가지전, 가지 튀김이 얼마나 맛있는데 그걸 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신난다.
원룸에서 되도록이면 뭐든 대충하고 살라며 이런 건 왜 가져가느냐던 딸에게 사진을 보냈다. 블루베리 말린 거 왜 들고 가냐고 종알거려서 블루베리 듬뿍 넣은 핫케이크를 간식으로 이렇게 자주 해 먹는다고 증명이라도 하려는 거다.
블루베리가 사각사각 씹히는 게 좋다. 심심하게 밀가루 맛만 나는 것보다 훨씬 내 입에는 맞다.
음식을 만들어서 먹고 나니 기분이 좀 풀린다.
사는 게 이유도 없이 서럽고 또 서러워서 방바닥으로 꺼져 들어가는 몸이 내가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 풀린다. 혼자가 아니었다면 만두 사서 만둣국이라도 끓였거나, 달걀국이라도 곁들였을 텐데 국물 요리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내 식성대로 한 그릇 음식만 했다.
매콤한 김치볶음밥에 김치가 듬뿍 들어가서 만족스럽고, 달달한 블루베리 핫케이크를 후식으로 맛있게 먹었다. 순간순간 감정에 휘둘리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혼자 살고 싶지 않다. 익숙해지겠지만, 이런 것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아무리 맛있는 것을 해 먹어도 돌아서면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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