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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2>

4월 16일

by 자 작 나 무 2022. 4. 16.

요즘 먹는 게 영 부실하다. 빵이나 밀가루 음식으로 한 끼를 대충 넘기기 일쑤다. 그래서 살만 찌고 실속이 없다. 어제 딸내미 만나고 와서 저녁에 인터넷으로 장을 좀 봤다.

 

고등어를 구워 먹으려고 했는데 기름 냄새나는 게 싫어서 고춧가루와 파를 버무려서 얹고 찜기에 쪘다. 어릴 때 그렇게 해서 먹던 생각이 났다. 혼자 사는 게 여러모로 좋지 않다. 오늘이 4월 16일이어서 마음 아플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생일 음식이 아니라 제사 음식처럼 밥상을 차리고 묵묵히 젓가락질을 하다가 딸에게 전화했다. 

 

점심때가 지났을 시각에 연락이 안 되는 게 이상하고 걱정돼서 한 시간 간격으로 두 번 전화했지만 통화가 안 됐다. 딸에게 전화해서 전화받지 않으면 내가 아는 거라고는 기숙사 주소뿐이다. 또 작년 봄에 느꼈던 것 같은 불안한 감정이 잠시 스쳤다.

 

낮잠을 잤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긴장된 감정이 풀어졌다.

 

딸 걱정할 때가 아니다. 내가 문제다. 계속 이렇게......어떻게 살지?

 

 

*

A 학교와 B 학교를 격일로 매일 번갈아 가며 출근하니 A 학교는 사흘, B 학교는 이틀 출근한다.

A 학교에 사흘 출근하니 거기선 한 번이라도 더 보는 게 커서 잠시 커피를 함께 마시거나 잠시 쉬는 시간에 잡담이라도 한마디 할 사람이 생겼는데 B 학교는 새로 옮겨 가서 사는 이 낯선 도시와 다를 바 없다. 갑갑하다.

 

막다른 골목 같은 도시에 막다른 골목에 갇힌 느낌이다.

 

이곳에 와있으니 더 절실하다. 지속해서 연락하고 만날 사람이 있어야겠다. 통영과 다른 이 도시는 돌아서 나갈 길 외엔 다른 길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종일 누워있었다. 밖에 나가면 종일 돌아다닐 수도 있는데 집에 있으면 그대로 마음이 그늘져서 사람 사는 것 같지 않다. 어제 진주에 나갔다 오는 길에 카키님 블로그에서 봐서 알게 된 훼라민큐라는 약을 샀다. 이대로 혼자 견디기엔 어려움이 많다.

 

나중에 언젠가 이상한 갱년기 증상은 어떻게 견뎠는지 기분이 어땠는지 기억을 더듬어야 할 때가 있을 것 같아서 기록한다. 좋을 때 좋은 일은 즐기느라 거의 쓰지 않으니 남긴 기록이 이런 것투성이다. 행복한 순간도 많은데 그땐 거기에 빠져서 혼자 글을 쓸 일이 없다.

 

*

A 학교에서 알게 된 사람 중에 조금 다른 에너지가 느껴지는 밝은 사람이 있어서 종종 시간이 맞으면 내려주는 따뜻한 커피를 받아 들고 대화한다. 거의 내가 쓸데없는 말을 쏟아내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런 기회가 조금씩 늘어나니 사람의 분위기를 그대로 읽게 된다.

 

취미 중 한 가지가 명상이라고 했다.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확실한 것 한 가지. 그렇구나...... 내 눈에 띄는 밝은 에너지와 미소에 확실히 끌린다. 열다섯 살이나 많은 내가 더 헙수룩하고 유치한 것 같다. 

 

 

*

20대 중후반에 알게 된 그 사람이 내게 꼭 한 가지 부탁이 있다고 했다. 둘이 피시통신 게시판에서 알게 되어 이메일을 주고받다가 자주 통화하고 마주 보고 대화하게 된 첫날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유치하고 우습기도 하지만 그 사람에게서 특별한 에너지를 느꼈다.

 

나는 주로 그런 사람에게 끌리는 모양이다. 어쨌든 그가 내게 한 가지 부탁한 것은

'보통 아줌마로 나이 들지는 말았으면.....' 하는 거였다. 그게 무슨 말인지 그때도 알았지만, 내가 어떻게 나이 들지 그땐 알지 못했다. 그 시절 나이보다 두 배로 나이가 많아졌다. 나는 지금 보통 아줌마가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그때 말한 기준대로 평범한 보통 아줌마로 머릿속이 늙어버리진 않았기를 바란다.

 

점심 먹고 잠시 산책하면서 그냥 아줌마 머릿속이 어떤 것인지 짧은 대화로 경험했다. 나도 별 바를 바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사람은 분명히 아니었다. 그렇게 늙고 싶지는 않다. 그의 부탁이 아니었어도 내 성향 자체가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거다. 생물학적으로는 나보다 한참 젊어도 머릿속은 어느 시대를 사는 사람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갑갑하다. 자기가 속한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어떻게 그렇게 일말의 관심도 없는지......

 

*

30대 후반이 나에게 몇 학번이냐고 묻고, 또래인줄 알고 말을 종종 건다. 마스크 덕분에. 마스크 쓰고 일하는 게 힘들지만 가려서 좋은 점도 있다. 상상에 맡기는 나머지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더 어려 보이는 것. 마스크 벗고 밥도 같이 먹었는데 여전히 나를 또래로 생각해주니 이만하면 나쁘지 않지.

 

얼른 밖에선 마스크 좀 벗고 돌아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일은 내일 하고, 오늘은 마저 쉬어야겠다.

온화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 만나서 그 곁에서 좀 쉬면 이 까칠한 기분이 조금 나아질까.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겪는 불협화음이 몇 달의 경험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잠시 딸에게 마음 기대는 순간 외엔 한없이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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