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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2>

5월 10일

by 자 작 나 무 2022. 5. 10.

이틀 연이어 퇴근한 뒤에 겨우 씻고 그대로 잠들었다. 잠들었다가 깨니 어제는 한밤중이었고, 오늘은 애매한 시간에 깼다.

 

오랜만에 쇼팽 곡을 듣는다. 잠이 덜 깬 몸에서 뭔가 분리되는 듯한 기분이다. 잊었던 시간이 한 꺼풀 가라앉았다가 일어난다.

 

오후에 잠시 시간 내서 휴대전화에 든 사진 정리를 하느라 어느 시점부터 저장한 사진을 보는데 뭔가 울컥울컥 올라오고 가슴에서 벌레 한 마리가 심장을 뚫고 튀어나올 듯한 묘한 통증이 느껴졌다.

 

사진만 봤을 뿐인데,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사진만 봤을 뿐인데 그 시기에 억눌렀던 감정이 급작스레 파도처럼 순식간에 밀려와서 발목을 적신다. 적셔서는 안 될 신을 적셔서 우물쭈물 걷지 못하고 멍하니 서서 그 냉기가 머리끝까지 타고 오르는 것을 느낀다.

 

잠시 스치는 화면에서 한장 한장 펼쳐지는 사진을 보고 그 시간에 묶인 기억이 통제하지 않은 영역까지 고스란히 소환한다. 다시 꾹 눌러서 삼켜야 할 감정이 목구멍까지 치밀어올라서는 내려가지 않고 애를 먹는다. 그래서 퇴근한 다음에 그렇게 끝도 없는 피로감에 나가떨어졌는지도 모른다.

 

한동안 자중했던 탄수화물을 폭탄 들이붓듯이 먹고 빠져든 잠이 아침이 오기 전에 깬 것이 억울하다. 다시 제때 잠들지 못하면 내일도 여전히 비슷한 피로감에 시달리고 감정 조절이 힘들어질까 하여 신경 쓰인다.

 

그래도 오늘은 쇼팽이 나를 살린다. 피아노 선율에 나도 모르게 꿈틀거리는 것이 있다. 이리저리 휘저어놓았다가 확 놓아버려도 어딘지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비법이나 규칙이 존재했던 것처럼 음악은 마법처럼 나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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