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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2>

주식을 다 처분했다.

by 자 작 나 무 2022. 5. 18.

5월 18일

목돈이 필요해서 주식을 다 팔았다.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서 오늘이 마지막 기회였다. 어제에 비해 갑자기 확 내린 주가로 인해 계획한 금액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을 손절했다.

작년 10월 중순에 시작해서 정확하게 일곱 달만에 주식 계좌를 정리했다. 내 경제 상황에서는 쉽게 벌어서 모으기 어려운 돈을 두 달만에 쉽게 벌고서 간이 부었었다. 그러다 최근 두 달 사이에 그때 벌었던 만큼의 돈을 금세 다 잃었다.

 

원금이나 제대로 건졌는지 모르겠다. 처음에 돈 벌었다고 좋아서 아이폰 13 미니를 샀고, 그것은 딸에게 주고 아이폰 13 프로를 샀다. 결국 그 물건은 내가 번 돈으로 갚게 되었다. 벌이가 적으니 간이 작아서 늘 중고폰만 사서 쓰다가 처음으로 새 휴대폰을 샀다.

 

어떤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 시작점이 없이는 나는 늘 새로운 시도를 꺼려하는 보수적인 면이 있다. 경제력은 십수 년 몸이 아파서 제대로 일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겨우 살아남은 나에게 쉽게 확장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30대 초반부터 얼마나 오랫동안 기침에 시달리며 살았던가. 이만큼 좋아진 것이 얼마 안 된 일이다. 그래서 자신을 다그치며 이것밖에 못했느냐고 나무라지 않고 자책하지 않고 지내려고 애쓴다. 빚 안 내고 살아남은 것만 해도 기특하다.

 

*

갑자기 주식 계좌를 연 것도 지인의 적극적인 권유 때문에 얼떨결에 연 것이었다. 내 능력 밖의 일을 함부로 벌이지 않는데 그때 지인의 도움으로 그 돈을 벌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며칠에 걸쳐서 엄청난 금액을 손절하면서 원금도 겨우 건졌다.

 

마지막으로 권해준 주식을 사서 제때 팔지 못해서 큰 손실을 보았다. 어차피 원금 회수하면 그것으로 본전이니 아쉬울 것도 억울할 것도 없다. 정말 그 증권회사에서 계산된 숫자가 맞는지 의문스럽지만 빼고 더한 금액이 맞다면 원금은 건진 셈이다.

 

신경 쓸 수 없는 상황이니 어떻게든 다 팔아서 정리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20% 이상 손실 난 주식을 차마 팔지 못해서 손만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래도 더 기다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 일이 이렇게 틀어진 참에 다 팔아버렸다.

 

시원섭섭하다.

 

*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산책하다가 흰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뛰어드는 것처럼 이상한 나라 입구에 섰다.

 

이 상황에 관해 딸에게 충분히 이야기 하고 의견을 들었다.

 

딸이 어차피 그 돈으로 우리 인생을 크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배팅하라고 말했다. 내가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 그만큼의 돈을 모았다는 게 오히려 신기하다고 말한다.

 

미용실에 가지 않기 위해서 그대로 머리를 계속 길렀다. 다행히 긴 생머리가 잘 어울려서 큰 문제는 없었다. 대중탕에 가서 목욕하거나 마사지받는 것도 거의 최소한으로 하고 자신에게 거의 지출하지 않고 최대한 버티는 것이 적은 돈으로 버티는 방법이었다.

 

*

잘못될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우리가 그 돈이 없는 셈치고 가서 실컷 쇼핑이라도 하면 어떻냐고 물었더니 내가 말도 못 하게 아파서 전전긍긍하며 목에서 피를 토하며 벌어서 모은 돈이니 적거나 많거나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희한하게 흰 토끼를 따라가는 모험에는 동참하겠다는 거다.

 

우리는 일이 틀어지면 이번엔 빚을 내서라도 며칠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그간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그 길에 다 버리고 와서 그냥 열심히 살면 된다고 말한다. 딸이 그렇게 말해줘서 그냥 저지르기로 했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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