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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2>

소.원.성.취

by 자 작 나 무 2022. 5. 18.

지난 토요일 오후에 와룡저수지 둘레길을 딸과 함께 걸었다. 내가 이곳에 이사하고서 가장 자주 가는 곳이니 어떤 곳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어디쯤에서 쉬는지 어디쯤에서 전화를 거는지 말하면 딸은 그 정도는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나는 그 누구와도 긴밀한 소통을 하지 않고 산다. 다른 가족과 일절 연락하지 않고 딸과 둘이 소통하는 게 전부다. 나에게 연락하면 뭐든 이야기 하지만 내가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은 거의 없다. 나를 찾으면 그때나 존재하는 게 나다.

 

어떤 상대이거나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일상 어느 시점에서 끼어들어야 방해가 되지 않을지 알 수 없어서다. 내가 업무 중에 달리 카톡을 하거나 통화를 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친구도 각자의 삶에 누군가를 불러들이는 것이 편하지 않은 시점이 있을 테다. 그걸 알 수 없으니 찾을 때나 반응한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도 수십 년 동안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도 있다. 그중에 우리 모녀를 가족처럼 대해주는 고마운 친구가 떠올랐다. 우리가 함께 가서 먹었던 음식점 중에 가장 맛있고 비쌌던 음식점을 들먹이며 거기에 그 집 식구들 함께 모시고 가서 맛있는 밥을 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게 내 생일맞이 소원으로 처음 뱉은 말이었다.

 

아니, 첫 번째 소원은 딸과 함께 그 주말에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었고,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 다음 소원으로 한 말이 그 말이었다. 다음날 낮에 거짓말처럼 그 친구 전화가 걸려왔다. 통영에 사는 친구가 정말 뜬금없이 갑자기 계획에도 없던 일이 생겨서 근처에 왔다는 거다. 

 

명절에 시댁에 가서 명절 일을 치르고 돌아와서는 우리 모녀 불러서 꼭 나물밥 한 그릇씩 먹이는 고마운 친구다. 가족과 소통 없이 사는 우리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이해하는 터라 이모라고 생각하고 준다고 잊지 않고 딸에게 용돈 봉투를 건네주는 고마운 친구다. 그런 마음 씀씀이가 수십 년 동안 한결같아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친구를 만나서 딸이랑 셋이서 맛있는 점심을 같이 먹었다. 점심 먹고 딸을 기숙사에 바래다주겠다고 하여 친구와 딸내미 학교까지 함께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내 생일마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시던 쑥떡 이야기가 나왔다.

 

직접 뜯어온 쑥을 많이 넣어서 아주 새까맣게 보이기까지 하던 그 쑥떡이 그렇게 맛있었다는 기억을 꺼내놓으며 떡집에서 사 먹는 쑥떡 맛이 아니었다고 그리움과 아쉬움을 토해냈다.

 

다음날,

점심 때 급식을 먹고 휴게실에 갔더니 가끔 맛있게 커피를 내려주시는 B.K샘이 쑥떡을 들고 오셨다. 시어머니께서 직접 뜯은 쑥을 듬뿍 넣고 만든 쑥떡이라고 했다. 이틀 전에 딸 만나서 말한 것은 다음날 이뤄졌고, 다음날 그 소원 속의 주인공이었던 친구 만나서 말한 것은 그다음 날 바로 이뤄졌다. 쑥떡을 먹은 그날이 바로 내 생일이었다.

 

감사하게 그 떡을 맛봤다. 대단하지는 않아도 의미를 두고 있던 내 작은 소원이 바로 이뤄졌다. 그래서 이번 생일은 우연의 일치와 또다른 우연의 일치로 내 작은 소원을 다 이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작은 사랑, 아끼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

 

크게 바라는 것 없이 그렇게 살았는데 이번에 벌이는 일은 과한 욕심은 아닌지 조심스럽다. 

 

5월 18일, 아름다운 봄꽃으로 치장한 학교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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