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새 원두를 주문하지 않아서 거의 매일 네스프레소 버츄오 머신으로 커피를 뽑아서 마신다. 오늘 아침엔 오전 오후 두 번 충분한 카페인을 섭취해야 할 것 같아서 캡슐 4개 분량의 에스프레소를 뽑았다.
추가 설명할 자료를 뒤늦게 꺼내서 잠시 보다가 슬쩍 스친 손이 그 많은 커피가 담긴 텀블러에 닿아서 순식간에 작은 거실이 진한 커피로 뒤덮였다. 오늘 골라 입은 노란색 원피스는 에스프레소 원액을 듬뿍 들이켜서 갈색으로 변하고 흰 테이블 주변은 금세 커피색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침착하게 걸레질로 대략 홍수 수준으로 거실 바닥으로 퍼져가는 진한 커피를 수습하고, 드라이 크리닝해야 하는 원피스를 급히 찬물에 헹궈놓고 다른 옷을 얼른 찾아서 입었다.
그렇다고 내가 커피를 포기할 수 있나? 에스프레소 3샷을 뽑아서 다시 텀블러에 담았다.
퇴근하고 돌아와서 거실 바닥과 에스프레소 머신 주변을 깨끗이 닦고, 그 덕분에 주방도 닦고 물걸레 청소를 하게 됐다. 그래, 엊그제 청소했지만 이렇게 깨끗하게 청소 한 번 더 하고 좋지 뭐.
이미 엎질러진 물이나 커피는 닦아내면 그만이다. 이미 엎어졌는데 호들갑 떤다고 원상복구 되지는 않으니 조용히 수습하면 된다. 오늘 아침 다급한 시각에 벌어진 일에 내가 대처하는 것을 보니 타인과 연루되지 않은 일은 뭐든 혼자 감당하는 버릇 들어서 호들갑떨지 않는 게 마음에 들었다.
대단히 소리칠 일도 아닌데 뭐든 화부터 내고 소리 지르고 상황을 더 힘들게 만드는 어른을 겪어봐서 배운 삶의 지혜다. 나는 그런 어른은 되지 않겠다고 어릴 때 결심했고, 생각한 대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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