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바빴던 오전 일과를 겨우 따라잡았는데 빗길을 뚫고 점심 먹으러 밖에 나가자는 요청을 받았다. 나는 특별한 이유 없이 거절하지 못하는 성향이다.
4교시에 학생과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하지만 감정적인 영향을 받아서 살짝 어지러웠던 일에 가슴이 콩닥거리는데 낯익은 사람의 요청.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럴 거다. 그럼 내가 못할 이유가 없으면 그냥 하면 된다.
꽤 비 내리는 오후에 우산 쓰고 나가서 쌀국수 한 그릇 먹고 왔다.
몇 번이나 반복되는 상황이 가슴에 꾹꾹 눌러져서 이번엔 화가 훅 올라왔다. 큰일 아니어도 담아두면 나중에 터질까 하여 점심 먹는 자리에서 음식 기다리는 동안 종알종알 터놨다. 잡다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곳이 있고 들어주는 분이 계셔서 감사하다. 왜 화났었는지는 덕분에 잊었다.
글이나 말로 털어버리는 게 확실히 효과적이다. 단편적인 틀 외엔 기억나지 않으니 다시 화를 낼 수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