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일
기록 없이는 기억도 없다. 기록 없이 기억하는 바도 많지만 내 기억은 순서가 맞지 않거나 잘못 기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엊그제 잠시 일기를 쓰면서 그 해가 언제인지 잘못 쓰인 것도 나중에 기록을 뒤져보고야 기억이 정확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거의 20년이 지나가버려서 그때가 아이가 다섯 살이었을 때인지, 네 살 때였는지 그 사이 몇 년의 기억은 묶음으로 희미하다.
기록을 뒤져보니 꼭 열흘 전에 이곳에 다녀왔다. 이후에 계속 꼼짝 못 하고 있다가 열흘만에 차 타고 나갔다 왔다.
40분 남짓 운전하는 것은 괜찮았다. 에어컨 틀어놓고 그날 돌아오면서 듣던 영화 OST를 계속 듣다 보니 도착했다.
몸이 공중에 붕 뜬것처럼 묘한 느낌이 들었다. 한낮에 기온이 높아서인지 그간 이불 밖에 나가지 않고 가만히 누워 지내기만 해서 그런지 걷는 것도 힘들게 느껴졌다.
돌아갈 길을 생각하니 오래 걷기엔 진땀이 나길래 조금 걷다가 돌아섰다. 그곳을 거닐 때 들었던 봄날 꿈같던 생각은 잠시 머릿속을 한 번 휘젓고 바느질한 실이 매듭을 소홀히 하여 호로록 풀린 것처럼 사라졌다.
다솔사에 다녀오는 길에 섰던 나무에 벌써 노랗게 단풍 드는 것 같은 풍경이 어느 순간 그려져서 올여름은 이렇게 가는구나 싶다. 이미 한참 지난 어느 가을에 올여름을 그려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시간의 물리적인 순서는 이미 머릿속에서 틀어져서 희한하게 생각이 나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 길 끝에서 눈물을 닦아냈다.
못에 물이 너무 탁하고 주변에 벌레가 있어서 물이 보이는 숲 속에 앉아서 쉬고 싶었던 욕심은 채울 수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비토섬'을 목적지로 설정했다. 다리 놓이기 전에 아주 오래전에 비토섬 앞 서포 마을에는 한두 번 우연히 지나가 봤던가...... 그다지 갈 일이 없던 인연도 없는 곳이지만 서해안 느낌이 드는 사천만 지역을 한 번 둘러본다는 기분으로 드라이브했다.
이런 느낌의 서해 바다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비토섬에서 물이 나면 건너갈 수 있는 월등도 앞에서 차를 돌렸다. 물이 들면 차 타고 나올 수 없는 작은 섬인데 차 몇 대가 들어간다.
별주부전 테마파크가 근처에 있다는데 이 동네엔 다리 이름이 '토끼교, 거북교' 길 이름은 '용궁로'
이상한 나라에 다녀오는 기분으로 멀지 않지만 낯선 곳에 다녀오는 것으로 열흘 만의 짧은 나들이를 마치고 오랜만에 밥도 한 끼 사 먹었다. 일주일 넘게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젠 오히려 믿기지 않는다. 금세 적응하는데, 막상 나서기 전까진 계속 밖에 나가지 않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그렇게 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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