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방에 가만히 누워있으니 기운이 나는 게 아니라 가라앉는다. 문득 다솔사에 다녀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엔 다솔사에 가려다가 바닷가에 간 날이 있었다. 오늘은 이상하게 다솔사에 꼭 가고 싶었다.
2005년 4월 다솔사
내 나이 서른여섯 살 봄에 찍은 사진으로 기억하는 다솔사. 이후에도 한 번쯤은 다녀온 것 같은데 기록이 없어서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 지내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 대중교통으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갈 수 없었던 곳이다.
들어가는 길이 주차장에서 한참 걸어 들어가면 촘촘하게 자리 잡은 삼나무 숲을 지나는데 그 길이 인상적이었다.
20대 초반에 처음 갔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대학 다닐 때 기억이 이렇게나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리다니......
돌아가는 차 안에서 듣던 음악,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OST
혼자 가면 사진을 많이 찍게 된다. 정리를 하기보다는 보관의 개념으로 사진을 그대로 올려둔다.
다시 이 곡을 들으니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혼자 한 생각이, 그 감정이 떠오른다. 밀린 일 다 끝내고 조만간에 또 가야겠다.
주인을 기다리는지 강아지 한 마리가 저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고개만 살짝 돌렸다가 차 들어오는 길만 쳐다본다. 끝내 자리를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저렇게 한자리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게 어쩐지 내 모습 같아 보이기도 해서 나도 강아지를 물끄러미 돌아서서 또 본다.
카메라에 희부연 게 묻은 것 같은데 마땅히 닦을 것도 없어서 대충 찍었더니 집에 와서 보니 사진이 조금 아쉽다.
사천시 곤양면 봉명산 다솔사
옛날에 저 해우소에 가는 게 무서워서 딸이 호들갑을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구경만 했는데...... 나도 솔직히 오금 저려서 깊이 판 재래식 화장실에 들어가지 않는다.
얼마 전 고성군 운흥사에 갔다가 저런 옛날 돌계단을 다 없애버린 것에 실망했는데 여긴 고색창연한 그대로 옛날 분위기가 난다. 한때 대양루를 개조해서 전시 공간으로 만들어서 보기 흉해서 가기 싫어졌던 때가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그 이후로 이곳에 대해선 잊고 지냈다.
누군가의 염원을 담은 돌이 쌓인 곳, 돌 한 조각에도 실어보는 간절함을 돌아보게 된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
불상을 모시지 않은 법당이다. 바깥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이 있다.
손을 세 번 씻고 합장하고 시계 방향으로 세 바퀴 돌면서 기도하라는 안내문이 있다.
이 자리에 섰는데 마침 딸 전화가 온다.
"이제 너는 내가 뭔가 기원하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고 사니까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했어."
세상에 아픈 사람들을 조금 덜 아프게, 얼른 나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이 그들만의 것이 아니기를, 한 겹씩 삶의 무게와 고통이 마음을 낸 이들의 기원의 힘으로 나눠지고 희미해지고, 마침내 온전히 이겨낼 힘이 생겨나기를.
다음에 조금 일찍 와서 이 자리에서 바람에 땀이 식을 때까지 앉았다 가야겠다.
나무가 자라는 길목에 세운 지붕에 닿은 고목이 다 죽어가는 것 같아도 패인 상처를 닫고 자라도록 지붕을 뚫어서 설치했다. 그냥 베어버리지 않고 저렇게 살게 해 줘서 고맙다. 내가 아니어도 살아 있는 것은 살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
가을에 시원해지면 다솔사 가는 길 입구에 주차하고 이 길을 걸어 올라가야겠다.
한동안 잊고 있던 곳에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한동안 잊고 있던 연주곡을 꺼내서 듣고, 잊고 있던 인연도 떠올려봤다.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지금 내 삶에 감사하며........
온몸으로 스며드는 듯한 음악을 들으며 아주 천천히 달리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언젠가 다시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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