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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2>

지금 심정은......

by 자 작 나 무 2022. 8. 15.

방해받지 않고 혼자 조용히 필요한 것을 다 갖추고 편안하게 여생을 산다면 과연 행복할까?

 

8월 5일에 딸이 잠시 다녀간 뒤에 사람과 대면하고 대화하지 못했다. 어제는 무리해서 일하겠다고 커피 한 잔 마시고 밤새 잠 못 들고 뒤척였고, 오늘은 그 바람에 머리가 멍하다. 이렇게는 살 수 없다. 아니,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뭘 해도 즐겁지 않고 뉴스를 보거나 들으면 숨이 막힌다. 이렇게 답답할 때는 잠시 현실도피 삼아 아주 멀리 떠났다가 돌아오고 싶다. 지구를 떠나고 싶다. 우울감 때문에 생기는 혼란스러운 감정에 드는 생각일 거다. 

 

이렇게 긴 단절 끝에 내일 말할 기회가 생기면 기분이 어떨지 궁금하다. 머릿속으로는 기분 좋은 장면이 그려지지 않는다.

 

딸은 힘들고 복잡한 일이 생기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아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고등학생일 때 학업이 부담스러울 때나 해야 할 일이 많을 때 그런 말을 했다. 의무감에 해야 할 일을 앞에 두고 귀찮고 부담스러운 감정 표현을 그렇게 했다. 마냥 토닥토닥하고 보살펴줄 내가 있으니 아이가 되는 게 저에겐 꿈같은 좋은 일이겠다.

 

나는.......

돌아가고 싶은 지점이 없다. 아니, 떠오르지 않는다. 딱히 언제는 좋았다고 할 만큼 마냥 행복하고 좋은 기억만으로 가득한 때가 있었던가. 전반적으로 열거하면 피곤한 일이 꽤 많았다. 그래도 순간순간은 얼마나 많이 웃고 잘 견디고 잠시 누리는 행복에 감사했던가 생각하면 그리 나쁜 인생은 아니었다.

 

왜 태어나서 각자 다른 삶의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납득하기 전까지는 궤도를 이탈하여 확 튀어나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면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삶에 끌려가는 느낌이 싫었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금세 수긍하고 적응한다. 나에게 큰 고난이라고 느껴지는 일은 거의 없다. 객관적인 감정표현이나 상황표현을 하는 정도 외에 사무치게 힘든 일은 없다. 조금 지치고 귀찮은 정도를 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가장 무난하게 해결할 방법을 찾고 그대로 실행하기만 하면 어떤 일이거나 그럭저럭 지나간다.

 

지금 내 문제는 그 문제 앞에서 기피하는 이상한 상황에 놓인 거다. 아니, 내가 자신을 거기에 놓고 왜 이러는지 이해를 못 하는 거다. 혼자 고립된 상태로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쫙 펴고 웅크리고 있는 모양새다.

 

딸이라도 만나고 싶은데 확진되기 전날 내가 많이 아프다고 다녀가라고 말해서 왔다가 이틀 뒤에 딸도 아프기 시작했다. 그 죄책감 때문에 같이 밥 먹자고 불러내러 거기까지 갈 수가 없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나도 직장에서 점심시간에 밥 같이 먹는 동료의 동료가 확진되고 줄줄이 이어서 생긴 결과인데 필요 이상의 죄책감에 시달린다. 머리는 아닌 줄 알겠는데 감정은 압박감을 느낀다.

 

그래서 화나고, 미안하고, 그간 밀린 일에 대한 부담감까지 감정이 복잡하다. 한 것도 없이, 하는 일도 없이 감정에 과부하가 걸려서 어젯밤엔 부품의 결함으로 자폭장치가 가동된 로봇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냉장고에 남겨둔 마카롱 한 개를 먹고나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싶었다. 단 것 먹고, 커피를 마셔도 아무 소용없다. 이럴 때 어떻든 빨리 이 상태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어딘가 전화를 할까 생각했다. 이럴 때 편하게 전화해서 내 감정이 이렇다고 토로할 친구가 있는지 생각해본다. 딸 외엔 없다. 딸은 친구가 아니라 자식이니 편해도 편한 게 아닌 상황도 있다.

 

이럴 때 그간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으며 생전 먼저 전화하지 않던 친구에게 전화하면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생각만 해도 갑자기 서럽다. 눈물을 쏟아내고 싶은데 그냥 삼키게 된다. 

 

내가 주는 것 없이 누군가에게 뭔가 바라는 건 불편하다. 감정을 기대는 일조차 그렇다. 그렇지 않을 만큼 어색하지 않고 친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그만큼 거리를 두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저 엎어질 듯 사람이 좋아서 평생 보고 살고 싶어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나는 여전히 섬이다.

 

잠시 산책이라도 하고 오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더워서 나가기 싫다. 블라인드 내리고 한숨 자면 괜찮을까 싶은데 커피를 마신 뒤에 심장이 울렁거려서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보다는 아직 마무리 하지 못한 일이 부담스러워서 뭘 해도 편하지 않다.

 

이 잡념망상에서 얼른 벗어나서 집중해야 한다.

 

 

*

이 정도로 장면전환이 어려운 것으로 보아 아마도 우울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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