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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2>

8월 14일

by 자 작 나 무 2022. 8. 14.

2004년 10월

*

옛날 생각하다가 옛날 일기에서 찾아낸 사진,

딸이 다섯 살 때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증세를 보여서 대학병원에 일주일 입원한 적이 있었다. 퇴원한 뒤에 병원 진료받으러 진주에 갔다가 개천예술제 행렬을 보고 잠시 섰다가 사진을 찍었다. 가방에 필름 카메라를 넣어서 들고 다니던 시절이었고, 저 사진은 행인의 손에 찍힌 필름 카메라 사진. 나중에 어느 순간 이 정도도 기억해내지 못할 것 같아서 기억난 이야기를 붙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큰 종양이 딸의 왼쪽 눈두덩이를 중심으로 이마까지 큰 혹으로 부풀어 올랐다. 동네 병원에서 대학 병원으로 가서 수술받아야 한다고 해서 대학 병원에 입원해서 하마터면 눈두덩을 찢는 수술을 받을 뻔했다. 처음 보는 증상에 당황한 의사들이 차례로 검사만 반복하고 항생제를 종류대로 바꿔가며 투약했다.

 

일주일 만에 조금 가라앉는 기미가 보여서 수술은 없던 일로 됐다.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아이의 얼굴, 어린이인데 괘씸하게 성인 남성 5인이 입원한 6인 병실에 자리를 줘서 거기서 일주일을 꼬박 지냈다. 병원비를 정산하지 못할까 봐 여기저기 전화를 여러 통 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애가 놀랄까봐 힘들어도 힘든 기색 한 번 하지 않았고, 울지도 않고 용감하게 잘 버텼다. 가끔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나는 날, 그때 흘리지 못한 눈물이, 그때 터뜨리지 못한 울음이 쏟아지는 날도 있었을까.

 

 

*

휴대전화를 열면 필요한 번호는 다 저장되어 있으니 굳이 번호를 외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내 번호는 자주 쓰고 익숙해져서 겨우 외우는 정도다. 30대 중반 정도까지는 20대 후반에 기록했던 전화번호 목록에 있던 번호를 어느 정도는 기억했던 것 같다.

 

지난 일을 세심하게 다 기억할 필요는 없지만 기억해야 할 것도 있다. 어떤 기준에 의해 선별해서 기록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진을 찍으면 대체로 사진과 함께 간단하게 뭐든 기록한다. 내 생각의 변화나 모든 일상을 기록하는 게 결코 아니다. 친구 공개나 비공개로 기록한 것도 많으니까.

나만 알고 싶은 것은 드러내지 않는다.

 

최근에 블로그에 발끈한 감정 상태로 거르지 않고 뭔가 써놓고 보니 그 감정이 수그러든 다음엔 조금 갸우뚱해졌다. 저런 말을 왜 썼을까?

 

그것을 기준으로 자신을 다시 본다. 그냥 아는 사람과 내가 친구로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 대하는 태도가 아주 다른 사람이란 게 느껴졌다. 직장에서 스쳐가는 인연은 지나가면 의례적인 인사 외엔 주고받는 일 없는 사무적인 관계로 생각해서 마음에 방을 만들지 않고 딱 그만큼의 무게만 갖는 관계로 이미 설정하고 있다.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혼자 있으면서 생각하게 됐다. 내가 그런 사람이구나.......

 

내가 아니어도 챙겨줄 사람이 많은 그들에 대해 내가 따로 마음 쓸 이유가 없다고 여기는 거다. 남 챙길 여유 부릴 대단히 품 넓은 사람도 아니고, 내어줄 것도 없는 나는 순간순간 내게 걸어오는 말에 진심으로 응대하는 것 이상은 하지 않는다. 다음을 기약하고 만들지도 않는다. 어쩌다 보니 뜨내기처럼 그렇게 살고 있다. 나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는 생각도 하고, 그들이 나를 분리하여 그렇게 대하는 습성에 익숙해져서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적당한 울타리를 만드는 거다.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나는 그렇게 자신을 지키는 거다.

 

그러지 않으면 아주 사소한 것에도 상처받고 고민하면서 살게 될 것 같으니 그 이상의 감정을 개입하지 않게 틀 지워버린다. 시간이 지나도 같은 마음으로 나를 찾는 사람과는 진짜 친구가 된다. 나이 들어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

여행기는 검색으로 드러날 수 있지만 잡다한 내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누구든 재밌게 시리즈로 읽을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다. 아주 건조한 문체로 대충대충 써버리는 말무덤, 감정 무덤 정도의 역할을 하는데 그걸 누군가 지속해서 읽는다면 과연 어떤 생각으로 읽는지 궁금하다.

 

나도 상대의 일상이나 생각을 어느 정도 들여다보며 서로 맺은 옛날 블로그 친구 외에는 대화처럼 댓글도 주고받지 않는다. 내가 네가 누군지 모르는데 내 일기를 봐서 뭐라고 썼다고 내가 뭐라고 반응하리?

 

그나마 읽는 대상이 막연해도 정해져있는 카페 게시판에서 조차 어떤 형태로든 소통을 끊어버렸다. 나를 전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처음 만나서 얼굴만 보고 뭔가 대화를 한다는 게 어색하고 우습고 이상해서 그보다는 조금 나으리라는 생각에 오래전에 시작한 일인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도 게시물을 많이 만들어서 카페 운영진이 선물을 준다는 게시물을 봤다. 내 닉네임이 들어있어서 놀라웠다. 하긴 얼마나 많은 잡담을 썼나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며칠 동안 '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다른 드라마나 영화는 머리 아파서 도무지 못 보겠고 30~40대 싱글이 일종의 짝짓기 하는 프로그램인데 처음 지루한 것을 넘기고 보니 꽤 볼만했다. 첫인상이 감정적으로 끌리는 대상을 선택하는 부분에서 나도 생각해보니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모만 보면 내 인상이 그렇게 다정해 보이지는 않겠다.

 

그리고 5박6일 혹은 4박 5일 동안 대화하고 데이트를 조금 한다고 얼마나 서로를 알게 될까? 그런데 이성 관계는 서로를 안다고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본능과 감정이 움직이지 않고는 뭘 해도 뻑뻑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해본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 나 같은 부류의 여자를 얼마나 오래 좋아할 수 있을까? 내가 특별한 부류는 아니지만, 코드가 맞지 않고서는 두 번 만나기는 어려운 부류임에는 분명하다. 상대가 나를 좋아해도 내가 싫으면 끝까지 싫다. 그런 의미에서 첫인상은 참 무서운 거다.

 

 

*

어제 산책겸 드라이브 나갔다가 오래 걷지 못하고 그냥 온 이유는 아무리 기운을 차리려고 해도 자동으로 웃음이 나오던 그 상태가 되지 않고 얼굴이 금세 굳어진 탓이다. 뭔지 모르게 몸이 불편하거나 마음이 불편한 게 있으니 얼굴이 굳어졌다. 자연스럽게 그 상황으로 진행될 때까지 나를 그냥 편하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어제 처음 가보는 거북이, 토끼 이야기 섬에서 내 멋대로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어떤 순간에 나도 모르게 기운이 확 올라오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익숙하고 편안한 좋은 곳도 도움이 되지만, 어젠 낯선 곳에서 느끼는 산뜻한 기분도 즐거웠다.

 

오늘은 결국 커피를 한 잔 내려서 마시고, 카페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밤을 새도 할 것은 하고 내일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날 출근해서 남은 8월을 잘 견뎌보리라.

 

조금만 더 충전해서 다시 가까운 곳에 여행 다니고, 영화도 즐기고, 하던 대로 살면 그냥 무난하게 잘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이번 열흘의 기간 동안 업무를 물리고 완전히 분리하여 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작년 여름방학에 내내 생기부 쓰고 미친 듯이 개학 맞춰서 며칠 내내 생기부만 썼던 때를 떠올리면 올해 나는 참 무식하게 게으른 삶을 사는 것 같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쓸데없는 말을 주렁주렁 달았을까.

쓰다가 아무렇게나 흘러나오는 대로 말을 잇고 쓸데없는 게 다 흘러나온 다음에 마음속에 남은 정제된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군더더기가 빠져나가고 난 뒤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참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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