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을 며칠에 걸쳐서 다 봤다. 어쩌다 한 편 본 것이 가장 최근의 것이었다. 보다 보니 남의 연애하는 이야기가 신기하고 재밌어서 한 편씩 첫 회부터 보게 됐다.
30대는 참 어려보인다. 나는 나이 서른에 엄청 어른인 줄 알았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것을 어깨에 지고 살아야 하는 줄로 착각했다. 저런 어린 나이에 젊게 상큼하게 즐기고 살아도 되는 줄 몰랐다. 연애하고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서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사이가 깊어지고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 수 없다. 시작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 변화를 날것으로 엿보는 것 같아서 신기했다.
연애 비슷한 걸 해보기는 했는지 아무리 헤아려봐도 그 영역에 이름 올릴 대상이 없다. 그만큼 빨리 사람의 관계를 단정 지어버리고 감정이 흔들리지 않으면 돌아서버리는 게 나였다. 그 프로그램에서도 다들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계산하고 들어가 봐야 머리만 아프다.
가장 먼저 본 그 회차의 최종 선택을 앞두고 플레이 버튼을 정지했다. 그 사람은 설레는 사람을 선택할까? 만나서 즐거웠던 사람을 선택할까? 설레는 사람과 편하고 즐거운 사이가 될 수 있지만, 편한 사람과 설레는 사이는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설레지 않는 상대와 연애하기 어렵다는 거지.
설레거나 이미 좋아하는 감정이 생겼다면, 왜 좋아하는지 따지고 헤아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20대 후반 여성 출연자가 술 마신 뒤에 감정에 취해서 하는 인터뷰를 보면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5박 6일 동안 특정 남녀가 서로의 감정에만 몰입할 상황에 두면 저렇게 될 수도 있겠다.
아주 짧은 순간에 많은 게 결정된다. 그런 시작 없이 다음이 있을 수 없으니까 그 짧은 순간에 발휘하는 육감이 일종의 초능력 같은 것이 아닐까. 30대까진 가능해도 40대는 이성으로 헤아리는 것이 많고, 50대는..... 그런 관계에 자신을 두는 게 낯간지럽겠다. 40대 초중반 남성 출연자도 아저씨처럼 느껴졌다.
*
어제 자정을 넘긴 뒤로 감정이 요동치며 꿈틀거리는 것으로 보아 이미 내 마음의 절기는 가을이다. 오늘은 꽤 오랜만에 출근해서 여러모로 힘들었다. 몸은 아직 충분히 회복되지 않아서 기운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데 감정은 대상 없이도 먼저 흔들리고 움직인다.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도망치고 싶었는데 잠시 소리를 듣다가 깜빡 졸다가 깬 뒤에 괜찮아졌다. 어제 밤새 뒤척이느라 잠을 충분히 못 자서 피곤해서 그렇게 예민했던 모양이다.
내 마음의 절기는 오늘부터 가을.
바람 좀 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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