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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2>

어두운 빗길을 달리며.....

by 자 작 나 무 2022. 9. 3.

어둠 속에서 유난히 등이 어두운 작은 차는 나를 온통 긴장하게 한다. 하필이면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고도 그 어두운 길이 나뉘는 지점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해서 조금 다른 길로 갔더니 한참을 돌아서 간다.

 

남해 실내체육관에서 학교 스포츠클럽 배구대회가 있었다. 준결승에 오른 팀을 응원하러 오후 늦게 집을 나섰다. 경기가 미뤄져서 오후 6시 넘어서 준결승전이 치러진다기에 선수로 출전한 학생이나 인솔교사 몇 분이 너무 고생하신다 싶어서 드라이브 삼아 한 시간 내로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잠시 다녀올 생각이었다.

 

접전을 치르고 경기가 끝나니 7시 반. 어둡고 비는 슬슬 뿌리기 시작하더니 갈수록 거세진다. 한 번 잘못 든 길은 꽤 멀었고 논두렁 밭두렁 옆에 난 좁은 길로 나를 이끌었다. 인가도 드문 어두운 동네를 지나는데 비도 내리고 어두우니 초긴장 상태가 된다.

 

인솔교사 외에 응원팀 없이 경기하는 학생들에게 잘 들리지도 않을 텐데 배구 코트 옆에서 오두방정을 떨며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쳤더니 손바닥이 벌게지고 혈액순환도 잘 돼서 좋았다. 집에서 혼자 뒹굴거려봐야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었겠나 싶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 운전은 심장이 어찌나 졸아드는지......

 

무사히 돌아왔는데 뒤늦게 배고프다. 다음 주엔 우리 집에서 사흘 자겠다는 동료를 맞기 위해서 집 청소를 좀 해야겠는데 하루 남았다고 오늘은 손도 까딱하기 싫다. 월요일은 태풍이 통과하는 상태에 따라서 재택근무로 온라인 수업을 하거나 출근하거나 둘 중 한 가지로 정해질 것이고, 화요일은 확실하게 남부 해안지대는 태풍의 영향권에 들기에 온라인 수업으로 확정되었다.

 

태풍 매미가 왔을 때도 이렇게 남쪽 지방에 큰 재해가 올 것에 대해 예보를 친절하게 해 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때 해일이 온다는 뉴스 하나 보거나 듣지 못해서 방 안에서 자는 잠에 해일에 휩쓸려서 죽을 뻔한 것이 잊히지 않고 정부의 대응에 눈 크게 뜨고 보게 된다. 서경 지방만 사람 사는 곳인 듯하던 그때 분위기가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것 같아서 화가 났었다.

 

이번엔 크게 수재를 입는 일 없이 무사히 비바람이 지나가 주기를 바란다.

 

어제 문단속하러 저녁에 통영 집에 다녀오는 길에 딸이 그랬다.

 

"그때 내가 어렸지만 어렴풋이 기억나. 엄마가 목말 태워서 나 데리고 나갔을 때 나 너무 무서워서 엄마 목에 매달려서 엄마 목 조른 거......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그리고 그날 주인집 아저씨가 그때 우리 대피하라고 문 두드려주지 않았으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해."

 

요즘 다시 유행하는 말처럼 각자도생 [各自圖生]의 시절이었다. 국가는 국민을 큰 위험으로부터 구할 의무가 있음에도 뒷짐 지고 있는 한심하고 답답한 때에, 각자 살아날 궁리하기 급급하여 더 삶이 무겁고 힘들어질 수 있다.

 

내가 낸 세금이 허투루 쓰이고, 진작 피할 수 있는 재난을 직격탄으로 맞게 하는 불의한 현실을 교과서가 아닌 현실로 경험하게 해주는 시절이 종종 있다.

 

최근에 사회정의론 다음에 국가론에서 거의 정의로운 국가에서 일부 부정의한 법과 정책에 맞서는 시민의 역할에 대해 가르쳤다. 우리의 권리와 국가의 역할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 판단도 할 수 없는 무지렁이로 사회에 나가서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삶 속에 갇히기 전에 학교에서 그런 거라도 가르치라고 교과서에 실어주니 고맙네.

 

언제나 그러하듯, 생각 흘러나오는 대로 두서 없이 쓰는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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