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견디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병가를 내고 의사를 만나러 갔다. 일반적인 진료 시간보다 한참 길게 앉아 내가 말을 계속하는 바람에 의사 선생님께서 곤란해하시는 것 같았다. 다음에 이렇게 길게 상담하려면 따로 약속을 해야 한다는 말씀은 진료비를 더 받는 다른 진료를 신청하라는 뜻인 것 같다.
딸이 병원에 동행하여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마음이 한결 편했다. 그럼에도 나는 말하는 도중에 울음을 터뜨렸다. 앞으로 한동안 속에 담긴 것을 털어버리러 돈 내고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날 것인지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홀가분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는 내가 당한 그 수모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고,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시선이 불편해서 선을 지키느라고 감정을 억누르고 또 억누르느라 힘들었다. 그 감정이 의사와 이야기 하면서 그만 터져버렸다.
병원에서 나와서 뭔가 먹어야 할 만큼 갑자기 허기져서 배고프지 않다는 딸을 이끌고 가서 뭔가로 배를 채웠다. 바로 집으로 혼자 돌아가기 싫었다. 헤어지기 전에 잠시 앉은자리에서 딸이 내게 줄 수 있는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주변에서 그런 반응을 해주기 전까지는 내가 얼마나 힘든 일을 겪고 있는지 잘 몰랐다.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깨질 것 같은지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피하고 싶었는데 내일은 제대로 일을 터뜨려야 할 시점이다.
화요일 밤에 그 일을 알게 된 딸이 바쁜 일을 끝내고 밤에 전화를 했다.
"엄마가 잘못한 일도 없는데 그런 일을 겪는 게 너무 화나고, 그런 일을 겪고 있는데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게 너무 속상해......." 전화기 너머로 딸이 대성통곡한다. 그대로 넘어갈 듯 오열하는 딸의 목소리를 듣는 게 고통스러웠다. 그제야 나도 눈물이 나왔다. 나는 담담하게 그 일은 내가 그렇게 열받을 일이 아니니까 괜찮다고 달랬지만, 딸이 생각하기엔 통념을 넘어선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들의 부모를 불러서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봐야 하고 무릎을 꿇리고 사죄받아도 시원찮을 일이라고 울먹이며 가슴 아프게 말한다. 그래서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세 치 혀끝으로 인간이 얼마나 야비하고 옹졸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전형을 경험한다. 나이도 새파랗게 어린것들이......
'흐르는 섬 <2020~2024> > <202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원 1일 (0) | 2023.04.12 |
---|---|
4.10 (0) | 2023.04.10 |
봄 (0) | 2023.04.03 |
내멋대로 (0) | 2023.04.02 |
차 빼러 갔다가..... (0) | 2023.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