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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3>

나무가 들어줬어

by 자 작 나 무 2023. 6. 4.

루지 공원에서 조금 걷다가 벤치에 누워서 셀카도 찍고 혼자 웃다 보니 살짝 기운이 났다. 황톳길을 걸을까 했더니 엊그제 마주친 아주머니들께서 양산도 쓰고 걷고 계셨다. 그래서 시간 보내려고 옮긴 자리는 통영 생태공원.

이 오르막이 싫어서 거의 혼자는 가지 않던 곳인데 오랜만에 왔다. 2021년엔 동료들과 더러 걷던 길인데 어떻게 된 것인지 혼자는 이 오르막을 오르기가 어찌나 싫은지.......

 

 

 

통영 운하교 건너 미륵도 전경

이 자리에 앉아서 까딱까딱 그네 타듯 잠시 바람을 즐겼다.

 

어둑해진 뒤에야 타박타박 걸어내려왔다. 문득 삼천포 시장에서 작년에 칼제비란 것을 처음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종종 같이 밥 먹던 밥친구 수경 샘도 그리워졌다. 작년 5월에 혼자 울산 여행 갔다가 울산 대왕암 공원 화장실에서 딱 마주친 내 밥친구.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그 집 꼬맹이 뒤를 졸졸 쫓으며 동영상을 찍어주던 그 시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립다는 생각, 수제비 국물, 단란한 가족의 뒷모습...... 나도 모르게 산길에서 울음이 터졌다. 갑자기 길에서 엄마 잃은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울음이 터져 나오는 대로 그냥 울었다. 곁에 섰던 나무가 소리를 낸다. 잎을 떨어뜨리며 기척을 내준다.

 

울다가 기운이 발바닥까지 내려가서 걸음이 땅에 붙는다. 뒤 따르는 그림자도 없이 비탈진 공원을 내려왔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던 가슴이 조금 가벼워졌다. 2023년 6월 4일. 오늘로 한 살 더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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