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그나마 약속이 있어서 밖에 나가서 움직이기라도 했는데 오늘은 몸이 천근만근이다. 일으켜 세워도 금세 누울 자리만 보인다. 무리하게 며칠 움직인 것이 화근이 되었는지 그간 비축한 힘이 어디론가 다 새어나간 기분이다.
어제 갔던 세자트라 숲에서 자리 깔고 한숨 자고 나면 나을 것 같은 기분인데 그럴 수가 없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이 흐르는 대로 손가락으로 옮기는 일 정도. 마음은 몇 번씩 섬진강으로 달리고, 지리산 계곡길을 따라 걷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거기까지 움직일 기력이 돌지 않는다.
누구든 만날 약속이라도 해야 밖으로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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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살짝 스치기만 했어도 어느 순간 문득 떠오르고 생각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애써서 만남에 향기를 전해주려고 해도 돌아서면 거짓말처럼 잊히기도 한다.
4월은 전쟁을 치렀고, 5월은 그 후유증 때문에 병원을 전전하며 방안에 갇힌 듯 살았더니 몸에 근육이란 근육은 다 녹아내린 모양이다. 밖에 나가서 좀 걷고 장거리 운전 한 번 한 것이 이토록 내 몸을 괴롭게 하는 일이 될 줄이야. 이제 밖에 나가서 먼 길 갔을 땐 그냥 자고 와야겠다.
짐 싸서 제주도로 건너간들 어차피 혼자 걷기 밖에 더하겠나 싶으니 움직이기 싫다. 마음 변하면 금세 돌아올 수 있는 곳에 다녀오는 것도 이젠 몇 번 하고 보니 지친다. 내 몸을 혹사시키는 게 무슨 큰 훈련이라도 하는 양 굴었던 것인지 벌을 받는다. 근육통에 시달리느라 이렇게 좋은 날에도 밖에 나갈 수가 없다.
그래도..... 아무도 나를 귀찮게 하거나 괴롭히는 이 없고, 집에서 조용히 쉴 수 있으니 이것도 내 복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냥 푹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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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그 중에 이럴 때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해야겠다. 조금만 더 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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