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물 웅덩이에 사는 개구리 합창 소리가 세상의 잡음과 침묵을 조율하는 시간, 손끝에 힘이 빠지더니 종일 붙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침상에 놓고 까무룩 하게 잠들었다가 깼다. 거실에 열어놓은 창으로 선선한 바람이 조금씩 넘나들어서 배만 덮고 잠들었던 내 몸이 열에 들떴다가도 지치지 않고 한숨 잤다.
낮에 한 시간 힘껏 달려서 딸을 만나기는 했는데 그대로 기운이 더 나지는 않아서 멀리 가지 않고 그 근방에서 밥을 먹었다. 밥만 먹고 딸을 다시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문득 도다리 미역국이 생각났다.
이번 내 생일에는 광어나 도다리 정도 사서 넣고 미역국 한 그릇 끓여 먹을 참이었다. 집에 혼자 있으니 끓여놔도 결국 혼자 먹겠다 싶어서 그냥 지나갔는데 어제 갑자기 그 음식 생각이 나서 기분이 먹먹해졌다. 어릴 때 한창 우리 집 중요한 날에 먹는 미역국은 그런 흰살생선 미역국이었다.
대형마트에서 손질 잘해놓은 생가자미를 샀다. 집에 와서 미역 불려서 참기름과 국간장에 달달 볶아서 손질한 생가자미에 칼집만 툭툭 넣어서 끓여냈다. 소금과 후추로 나머지 간을 맞추고 더 넣을 것도 없다. 그렇게만 끓여도 비린내 하나 없이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난다.
국 한 그릇에 살이 도톰한 가자미 한 마리를 다 담아서 자동반사 반응처럼 열심히 숟가락질을 하고 보니 금세 한 그릇을 다 해치웠다. 잊고 살았던 뭔가를 채워 넣는 듯한 추억의 음식이기도 하고, 무얼 먹어도 몸에 기운이 돌아오지 않는 묘한 기갈에 시달리는 몸을 보하는 음식으로 생각하고 맛있게 먹었다.
가자미 미역국 한 그릇 먹고는 갑자기 쏟아지는 잠을 이길 수 없어서 그대로 잠들었다가 깬 초저녁은 꼭 여름방학 전에 더위를 피해 마루 끝에 몸을 납작 붙이고 지쳐서 잠들었다 깼을 때처럼 기분이 묘하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 엄마가 간식으로 옥수수를 쪄서 내주는 그림 같은 추억이 이제는 내 기억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 본 것인지 소설 속에서 읽은 것인지 헛갈릴 정도로 가슴 한편에서 희미하게 찰랑거린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 아픔, 내 손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시절의 흑백의 풍경이 낮잠같은 초저녁잠 뒤에 밀려든다. 그 풍경 속에 희미한 숨을 내뱉으며 겨우 현재와 현실을 인식한다. 아직 나는 2023년의 시간에 서있구나.
내 생일 즈음에 노란 사골같은 진한 국물이 우러나던 미역국에 들었던 생선이 가자미였던 때도 있었겠고, 광어였던 날도 있었을 테다. 이젠 그 맛에서 느껴지는 향수며 진한 국물맛에서 느껴지는 감칠맛도 빼앗기는 시절이 왔다. 내게 느껴지는 공포감은 세상이 당장 멸망하는 것도 아니지만, 인류가 살아있는 생명에게 갈수록 잔인해지는 역발진 같은 황당한 사건의 연속선상에서 가치보다는 돈으로만 환산하여 타인의 삶을 위협하는 갑질에 찍소리 못하고 당하는 수밖에 없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자주는 아니어도 해마다 한 번씩은 싱싱한 도다리 미역국을 먹고 싶다. 광어, 가자미, 도다리...... 넣은 미역국을 먹고 싶다. 일본은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를 국토 내에서 재활용하길 바란다. 요즘 나라 꼴을 보면 그냥 지구를 떠나고 싶다.
'흐르는 섬 <2020~2024> > <202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잊지마~ 타이머 (0) | 2023.06.12 |
---|---|
현실 직시 (0) | 2023.06.12 |
그나마 (0) | 2023.06.09 |
꿀조합 (0) | 2023.06.09 |
졸릴 때 잘 수 있는 복 (0) | 2023.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