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동안 혼자 돌아다니면서 사진과 동영상을 많이 찍었다. 조금 더 체력이 좋은 상태였더라면, 혹은 주말 날씨가 조금만 더 선선했더라면 연화도에 만개한 수국의 물결을 보러 갈 참이었다. 거기까진 욕심인 듯하여 아름드리 큰 나무가 가득한 평지 숲 걸으러 함양 상림에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어제는 동네 편백숲(단점은 코스가 260m-그래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여러 번 왔다 갔다 해야 한다는 게 흠이다)에 사람이 거의 없을 시각에 가서 혼자 독차지하고 걷다가 깨방정 셀카도 찍고 티 없이 잘 놀았다.
숲에서 얻은 기운으로 가장 즐겨찾던 바닷가 산책길에서 해진 뒤에 조금 더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 동네 마트에서 먹거리를 사서 돌아오는 코스로 며칠은 숲과 바닷길 두 코스를 오가며 걸어볼까 싶다. 오늘은 수월리 방풍림에 가서 해 지기 전에 몇 번 반복해서 걷다가 동영상도 찍고 혼자 신나게 놀았다. 머리에 꽃만 꽂으면 영락없이 광녀가 되는 폼으로.
어제 산 고기를 굽기는 귀찮고 별로 맛있는 조리법이 생각나지 않아서 오늘 돌아오는 길에 알배추와 팽이버섯을 샀다. 엊그제 태운 찜냄비를 박박 문질러 씻어서 복구한 다음, 알배추와 팽이버섯, 얇게 저민 고기를 교차로 깔아서 쪘다. 양념간장에 푹 찍어서 먹으니 담백하고 꽤 먹을만하다. 불 앞에서 고기 굽는 게 싫어서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해도 귀찮았는데 한 가지 간단하게 채소와 고기를 같이 먹을 방법을 알게 됐다.
떨이 코너에서 산 갈아놓은 돼지고기 2,000원어치로 내일은 가지덮밥을 만들고, 얼떨결에 손질한 생가자미를 그냥 지나치지 못해서 업어왔으므로 미역국도 한 번 더 끓여야겠다.
감사하는 마음이 원망과 후회를 덮고도 남으니 참 다행이다. 얼굴이 매일 달라진다. 조금씩 생기가 돌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웃음이 자동 장착되던 시절처럼 조금씩 내 얼굴이 편안하게 변해가고 있다. 이번주면 병가가 끝난다. 겨우 이 정도 회복했다. 이 정도 기간이 아니었다면 다시 출근한다한들 살아남기 어려웠을 테다.
그간 나를 힘들게 했던 일이나 인연도 모두 감사하다. 덕분에 오늘 이런 시간을 갖고 감사하고 느끼는 나를 찾을 수 있었으니까. 모두 나를 키우는 거름이고 은인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쓸데 없는 잡념 망상을 녹여낸다.
내 몸은 자연 속에서 비로소 충전되고 치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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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오늘도 친구 부부와 그 바닷가에서 마주쳤다. 어제는 조금 머쓱하게 그간의 안부를 주고받았고, 오늘은 어제 봤다고 너스레를 떨며 까불까불 웃으며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오늘 바닷가에서 찍은 영상이나 사진을 정리하고 싶은데 피곤하다. 나를 보고 바닷가에서 배깔고 누워서 한참 장난치고 놀았던 고양이가 아른거린다. 나도 모르게 고양이에게 말 걸다가
"너, 우리 집에 갈래?"라는 말까지 했다. 진짜 따라왔으면 어쩌려고..... 그만큼 이상하게 마음이 짠하게 끌려서 그 자리에서 한참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제 바닷가 산책 갈 때도 츄르를 가지고 다녀야 하나...... 편백숲에 사는 고양이는 어제 특식을 가져오지 않아서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딸과 함께 갈 때는 츄르를 사서 일일이 나눠서 먹였는데 혼자 갈 땐 그냥 간다. 산속에 있는 길냥이 급식소에 물과 사료가 가득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