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더위가 시작된 뒤에도 공기 순환기를 틀어놓고 견디는 데에 별 지장이 없었는데 오늘은 조금 움직이기만 해도 훅훅 더운 열기가 사방에서 들어오는 날씨다. 바람맞겠다고 창을 열어놓는 것보다 암막 블라인드까지 쳐서 빛과 열기를 가리는 게 유용할 정도로 덥다.
틈틈이 에어컨 리모컨을 찾다가 포기했다. 작년에 이 집에 살지 않고 비워둔 바람에 그전에 리모컨을 어디에 잘 모셔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대체로 찾기 쉬운 곳에 던져두기 마련인데 몇 차례에 걸쳐서 정리하고 청소하면서 가구 배치도 바꾸고 눈에 띄는 것을 담아서 버리기를 몇 차례 반복하는 중에 작은 리모컨을 실수로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이미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벽걸이 에어컨 필터를 씻어 끼우고 수동 버튼 하나를 찾아서 눌렀다. 당분간 이렇게라도 써야겠다. 온도 설정이나 시간 설정은 못하고 오로지 전원을 껐다가 켜는 것만 할 수 있다. 그래도 시원한 바람이 부니까 좀 살 것 같다.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중에 수업과 관련한 자료를 먼저 독서대에 올려놓고 몇 장 읽기도 전에 더위에 지쳐서 결국 에어컨 바람 아래에 앉아서 일기 몇 줄 쓴다.
어제 오후 늦게 편백숲 + 바닷가 산책길 코스로 걷다가 어두워진 다음에 집에 돌아왔더니 주변에 주차할 공간이 없어서 애매한 자리에 차를 세워뒀다. 내일 이른 아침에 차를 빼달라고 할 수도 있으니 오늘 나가서 한 바퀴 돌고 마땅한 다른 자리를 찾아야겠다. 이 핑계로 오늘도 외출?
내일 가스 검침원이 방문하기로 한 날이어서 너무 창피하지 않을 정도로 집청소를 할까 했는데 더워서 진이 빠진다. 단백질 섭취를 위해 고기를 사오긴 했으나 집에서 굽기엔 거실이 너무 덥다. 식자재를 몇 가지 샀는데 아무리 머리를 돌려도 입맛에 당기는 메뉴가 떠오르지 않는다.
생일 선물로 강제로 받은 쿠폰을 등록하려고 앱 하나를 깔았더니 그 회사에서 생일기념 커피 쿠폰을 또 준다. 하필이면 만료기간 하루 전에 발견했다. 혼자 카페에 갈 일이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또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 차도 빼야 하고, 커피 쿠폰도 써야 하니까 외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