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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3>

6.19.

by 자 작 나 무 2023. 6. 19.

불안정한 상태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몰라서 잠시 방황하다가 거실 소파에 벌렁 드러누워 창밖으로 멍하니 하늘을 보다가 눈을 돌려보니 어제 청소해 놓은 말끔한 거실 상태를 보고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제야 어젯밤에 사 온 생가자미 생각이 났다. 오늘 끓이지 않으면 생물이라 상태가 나빠져서 비려서 못 먹을지도 모른다.

 

손질된 생선이지만 가위로 지느러미를 마저 오려내고 칼집 몇 개 내서 준비하고 불린 미역을 참기름과 국간장으로 달달 볶아서 국물을 만들었다. 오늘은 정신을 어디에 빼놓은 것 같은 상태로 국간장을 두 번이나 들이부어서 국물이 짜다. 가지덮밥도 만들겠다고 가지를 씻어놓긴 했는데 긴장이 풀린다.

 

마침 딸내미 전화가 와서 밀린 이야기를 한참 나눴다. 에어컨 리모컨 못 찾아서 수동으로 돌렸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내가 어느 상자에 넣어놨는지 알려줬다. 진작에 물어볼 걸 그랬다고 말하는데, 내가 자꾸 뭔가 잊어서 물어보면 바보 취급 당하거나 계속 멍청해지는 엄마 때문에 걱정할까 봐 두 가지 다 걱정 돼서 못했다고 말했다. 

 

수요일 오전 기숙사 이사하는 시간 약속을 하고, 점심 먹고 같이 영화도 한 편 보기로 했다. 이제야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딸에게 이것저것 털어놓고 말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를 힘들게 하는 일도 기분 좋은 일도 빠짐없이 거의 다 절친에게 털어놓듯 딸에게 말한다. 딸은 내게 세상에 둘도 없는 절친이다. 

 

 

*

며칠 전에 장자 이야기를 하다가 마음이 허령한 상태에 대해 토론했다. 딸이 이황, 이이, 장자와 관련한 단원 시험을 치느라 공부하다 보니 최상급 진리는 뭔가 한 방향을 가리키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제 그 부분까지 알게 되었다. 우리가 나이 들면서 조금씩 더 폭넓고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내가 어떤 희한한 말을 해도 딸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눈을 부라리거나 이상한 소리 한다고 타박하지도 않는다. 덕분에 나는 어떤 말도 망설임 없이 딸에게 할 수 있다. 자식이지만 인생 친구다. 더 나은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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