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에 지친 당신을 위한 방구석 인문학' 30차시로 구성된 온라인 연수를 듣고 있다. 자기 계발이 아니라 치유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던 내게 가볍고 편안하게 듣기 좋은 내용이어서 술술 잘 흘러간다.
글쓰기와 관련한 직업은 절대로 안 된다고 원천봉쇄 당하지만 않았더라면, 어쩌면 나도 저런 길을 걸었을까..... 강사의 나이 일곱 살에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 하던 딸을 위해 대문보다 큰 피아노를 들여오신 그분 아버지의 넓은 품이 내가 겪고 살아온 환경과는 원천적으로 다르다.
내 허리춤까지 닿지도 않은 선에서 나의 성장 가능성과 가치를 확 꺾어버린 경험이 오히려 내 자식을 있는 그대로 지지하기로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뭐든 대신해 주거나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대신하거나, 남 보기에 완벽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투사는 나이 어린 존재의 삶을 흔들어놓는다. 알면서 비슷한 잘못을 반복하는 이들을 보면서 내가 그런 부모를 만난 것은 어쩌면 다른 부모의 역할을 해보기 위한 선행 작업 같은 거였다고 생각해 본다.
아침에 고구마와 달걀을 찜기에 쪄놓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딸과 점심때 베트남 음식점에 가기로 했던 게 생각났다. 이미 딸을 만나러 나서기엔 늦은 시각에 그 생각이 떠올랐다. 또 약속은 다음으로 미루고 혼자 점심 먹고 커피도 한 잔 내렸다. 지난주에 대구 백화점 주차장에 들어간 바람에 배고플 때 산 달달한 유과를 목안이 얼얼해지도록 먹었다.
유과 좋아하는 딸 주려고 두 가지 종류의 유과를 샀다가 그거 한 봉지 주려고 딸내미 사는 곳까지 가는 게 너무 속보여서 가지 못하고 혼자 조금씩 먹어치웠다. 엊그제처럼 병원이라도 간다는 핑계가 있어야 하는데 이젠 먹고 싶다는 음식을 같이 한 번 먹자는 핑계 외엔 남은 핑곗거리가 없다.
평생 이런 짝사랑만 하더라도 그 존재 자체에 감사할 따름이다. 딸 안 낳았으면 여태 어떻게 버텼을까...... 자식은 나를 이 세상에 붙들어 매고 견디게 하는 묵직한 닻 같은 존재다. 딸 덕분에 주고 싶은 사랑의 온전한 맛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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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먹는 음식양을 줄여야 한다. 일주일 전후로 갑자기 시작한 폭식이 나를 점점 위험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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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의 계절, 여름 여행지에서 늘 나를 싱긋이 웃게 하는 꽃나무. 방안에선 세상이 그대로 꺼져 들어가는 것 같지만 막상 밖에 나가면 얼마나 행복한지 금세 잊는다. 어제도 그랬다. 밖으로 나서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오늘은 카페인도 별 도움이 안 된다.
호르몬의 역습에 시달리다가 낮에 개꿈을 꾸고, 가슴팍이 아파서 괴롭다. 세상엔 별별 통증과 괴로움이 다 있구나......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영역의 통증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럴 땐 의사를 만나서 묻는 수밖에 없겠다. 이런 때 나오는 감탄사 - 환장하겠다!
몸은 왜 이렇게 건사하기에 번거로운 게 많은지. 통증에 민감해지니까 별 것 아닌 것도 이렇게 아프게 느껴지는 것인지, 정말 많이 아픈데 미련하게 참고 이만큼만 아프다고 느끼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런 걸 물어볼 상대가 없으니 곤혹스럽다. 동성 친구여도 아무 말이나 막 물어볼 수는 없는 거니까.
밖에 나갈 이유가 있어야 해서 오늘 방학식 하는 친구와 저녁 약속을 했다. 아이 둘 낳은 친구여서 나보다 인생 선배라고 생각하고 늘 뭐든 물어본다. 나는 나이만 먹었지 잘 모르는 게 꽤 많다. 책에서 배운 거 외엔 정말 깡통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다가 지쳤다. 아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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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입고 나가고 싶은데 변변한 반팔 상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또 원피스를 입어야할 판이다. 내 사정도 모르는 어떤 친구는 바지 좀 입으라고 난리다. 왜? 마땅한 웃옷을 사야 바지도 입지. 정리할 옷이 많아서 새 옷을 살 수 없는 내 사정을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고, 널린 게 원피스인데 그런 종류만 입으면 어때서.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하지! 췟~
1. 머리가 왜 그렇게 길어? - 나 미용실 가는 거 귀찮아서 그냥 길러.
2. 왜 원피스만 입어? 바지 좀 입고 와 - 옷이 그것밖에 없어.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소심해지면 친구들이 하는 말이 생각나서 머리가 간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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