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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3>

8월 20일

by 자 작 나 무 2023. 8. 20.

정작 밖에 나가면 지금 방 안에서 느끼는 것과 바깥세상은 다르겠지. 

 

일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오히려 불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어제는 하루 쉬는 동안 딸이 추천한 미니시리즈를 봤다. '마스크 걸'이라는 7부작 넷플릭스 드라마.

 

오늘 딸이 전화해서 그 드라마 본 이야기를 했다. 누구 잘못인지 파고 들어가 보니 주인공 '김모미'의 엄마가 딸을 잘못 키웠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릴 때 무조건 예쁘다고 말해줘서 내 딸은 자기가 정말 예쁜 줄 알고 자랐는데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았다는 거다. 외모가 예뻐서 예쁘다고 한 게 아니라 내가 그만큼 자기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 줬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했다.

 

주인공 김모미가 딸 김미모를 임신했을 때, 친구 김춘애에게 한 말.

"아무리 못생겨도 예쁘다, 예쁘다 하면서 키울 거야....."

그 대사를 인용해서 내가 자기를 키우면서 한 많은 것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 드라마를 보고 문득 얼마나 자기를 예쁘다, 예쁘다 하고 키웠는지 생각나서 전화한 모양이다.

 

나도 그 드라마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 부모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생겼다고 생각하고 자라도록 내 외모에 대한 비평을 많이 했다. 그래서 사진 찍을 때마다 찡그리고 사진 찍는 것을 싫어했다. 외모와 관련한 부분엔 주눅이 들고, 이성 문제에 소심하기 짝이 없는 성향은 그 과정에서 생긴 문제였다.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나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부모의 양육 태도가 얼마나 자녀의 생활과 미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경험했기에 나는 딸에게 최대한 좋은 말과 감정을 표현하며 살았다. 덕분에 오늘 전화 통화로 그 드라마 이야기를 하며 딸과 자연스럽게 그런 대화도 했다.

 

웹툰 드라마의 설정처럼 비뚤어진 의식과 부모의 욕심이 더해져서 빚는 개인의 비극은 사회적 비극이기도 하다. 

 

"난 네가 어릴 때 먹는 것, 노는 것 엄청 좋아해서 타고난 성향대로 원하는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어. 그래서 공부하라고 다그치거나 책 좀 읽으라고 윽박지르지도 않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잘할 수 있게 지켜보는 역할만 했어."

 

그런데 어쩌다 보니 딸은 나와는 다른 이유로 내가 지나온 길과 교차되는 지점에 가 있다.

 

 

- 주오남

부모는 자식을 다 안다고 착각하지만, 주오남의 부모는 자식을 전혀 알지 못한다. 있지도 않은 능력으로 뻥튀기되어 과대평가되고, 기대치 남발의 희생양이 된다. 김모미나 주오남의 경우 모두 그런 길을 선택하지는 않지만, 김모미와 주오남의 비극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은 더 끔찍할 수도 있다.

 

- 김춘애

김춘애의 일화를 보면 김춘애의 등골을 빼먹은 아이돌 진출한 또라이의 인성과 돈으로 갈아엎은 김춘애의 환골탈태를 보면 외모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인성은 결코 돈으로 진화하게 할 수 없다는 거다.

 

*

어제에 이어 오늘도 밖에 나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오늘은 밖에 나가면 산책도 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제 쉬느라고 미룬 일을 마저 하려면 기운을 아껴야 했다. 그 핑계로 나를 가둔 방 안에서 탈출(?)을 감행하지 않기 위해서 헤나 염색을 했다. 서너 시간은 족히 냄새나는 헤나 가루를 머리에 잔뜩 바르고 버텨야 하니까 집에서 나갈 수 없다. 

 

이제 두 시간 남짓 지났는데 헤나가루 냄새가 독해서 정신이 혼미해진다. 특정 부위만 흰머리카락이 난다. 전체적으로 머리카락 색깔이 변하면 그냥 둘까도 싶은데 왼쪽, 오른쪽 양쪽 가르마 타는 부위 정도에만 집중적으로 흰 머리카락 몇 개가 올라온다. 한 번 시작한 염색은 한 달 간격으로 금세 물이 빠져서 반복해서 하게 된다.

 

화학 염색약은 끊은지 꽤 오래됐다. 옛날 옛적(?)에 밝은 색으로 염색했던 것을 다 길러서 잘라내고 염색하지 않고 지내다가 헤나염색을 시작했다. 가늘고 힘없던 머리카락이 헤나가루를 만나서 힘 있고 건강해진 느낌이랄까. 덕분에(?) 아직 이 긴 생머리를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 1시간 반 남았다. 헤나 가루를 타서 몇 시간 숙성시켜서 바른다는데 나는 그간 그냥 반죽해서 발랐다.

 

다음엔 조금 계획적으로 다른 사람이 남긴 팁을 활용해 봐야겠다. 이 지독한 풀냄새는 홍차나 커피를 내려서 그 물로 반죽하면 좀 낫다는 이야기도 읽었다. 꼭 다음엔 커피 내린 물로 반죽해서 하루쯤 숙성시켜서 발라봐야겠다. 무엇이 다른지 경험해 보기 전엔 알 수가 없다.

 

 

*

딸이 전화해서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끊으려는데 내가 이 말, 저 말 갖다 붙여서 오래 이야기했다. 특별한 용건 없이는 내가 먼저 전화하는 일은 거의 없다. 딸이 통화하기 편한 시간에 원할 때 대화하려고 내가 닦달하듯 전화하진 않는다. 

 

친구나 타인에겐 더더욱...... 나를 찾을 때만 반응한다. 특별한 감정이 있거나 없어서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이렇게 습성이 들었다. 혹여 상대를 불편하게 할까 봐, 내가 딱히 용건도 없으면서 전화하면 바쁜 데 시간 뺏을까 봐.... 기타 등등.

 

나는 보기보다 많이 소심하다. 특정한 계기로 마음먹고 일부러 뭔가 할 때 외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인 관계에 소심하다. 무심하다 못해 괘씸하게 느껴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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