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와도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다.
비 내리는 주말, 공원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며 비를 피해 내 옆자리에 앉은 나비에게 말 걸고 동영상을 찍었다. 그 순간 내게 걸려온 전화가 미묘한 각도로 내 감정을 움직이게 한 것인지 가을이 올 것이란 기대 때문인지 문득 커피를 마시며 나눈 대화가 도화선이 되었다.
그 길로 곧장 망설임 없이 20여 년만에 그곳에 찾아갔다. 자다 깨서도 그렇게 가슴을 치게 하던 삶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졌다. 그대로 질식사할 것 같은 통증에 힘겨워하면서도 넘지 못하던 벽을 그 순간 허물었다.
끝내 내 편이 되어주셨던 강 선생님과 일면식도 없는 내가 거침없이 기울어진 말을 이어가도 싫은 소리 한마디 없이 한없이 부드럽게 흘러갔던, 주말 오후 그 시각에 걸려온 전화 한 통. 특별한 이야기도 없었는데 마음에 빗장이 풀리고 녹아서 20여 년간 결코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문지방을 넘었다.
얼마나 길고도 짧은 세월이었나. 20년도 길지 않았다.
저장한 사진을 열다가 문득 그 순간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