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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3>

기억 멀미

by 자 작 나 무 2023. 10. 27.

 

2023-10-27

새싹 채소 사놓은 것을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다가 엊그제 두부를 샀다. 그땐 데쳐서 쓰려고 했는데 오늘 금요일이어서 구웠다. 스트레스 해소용 음식은 몸에 별로 안 좋은 줄 알면서도 기름에 튀긴 게 입엔 맛나다. 찐 고구마가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저 샐러드 접시에 든 음식만으로도 충분히 배가 찼는데도 고구마를 먹었더니 과하다.

 

내일 아점 약속을 제대로 잡아서 뿌듯하다. 내 딸과 학교에서 자주 어울린다는 친구를 볼 기회가 생겼다. 작년에 삼천포에서 알게 된 베트남 음식점에 딸 친구와 함께 셋이서 아점 먹으러 일찍 나서기로 했다. 둘이 가면 세 가지 음식을 주문하는데 셋이 가니까 더 많은 종류의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부푼 딸이 오늘은 통화를 길게 한다.

 

가볍게 먹고 좀 걸을 생각이었는데 벌써 졸린다. 포르셰 타고 아우토반을 달릴 수 없으니 내 다리로 운동장이라도 전력 질주하려고 했건만, 몸이 무겁고 눈꺼풀도 무겁다. 하루도 빠짐없이 힘든 일과에 지쳐서 돌아온다. 이러다 한순간 돌아서면 10년씩 20년씩 지나간다. 

 

 

 

*

짧게 스쳐갔어도 사람을 만나서 생긴 감정은 우주 공간에 일시 정지 상태로 물방울 모양 큐브에 담아둔 듯이 그대로 멈춰있다. 흘러갈 기회를 잃은 감정은 그대로 어딘가에 오도카니 바람도 없는 공간에서 시간을 잃고 멈춰 있다. 무중력 상태에 멈춘 그 순간의 감정이 간혹 자전 속도에 멀미하듯 울렁거린다.

 

발이 차가워져서 당신이 있는 곳을 향해 달리고 싶었다. 좌표가 없어서 찾지 못할 뿐. 내 감정은 부끄럽게도 아직 나이만큼 자라지 못해서 철 모르고 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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