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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10~2019>/<2018>

2018년 가을, 그 소년

by 자 작 나 무 2023. 10. 29.

질문: 수영을 하지 못하는 네가 물에 빠진 사람을 발견했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하겠니?

 

저 학생이 지적한 그날의 일은 동기와 결과를 생각하고 자신이 선택한 입장의 근거를 가지고 발표하는 수업이었다. 수영을 할 수 없는데도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향해 뛰어들겠다고 답했다.

 

'자기 목숨이 위태로워지는데 무작정 사람을 살리겠다고 뛰어들면 둘 다 죽게 될 수 있으니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다'라는 피드백을 했다. 우리가 이런 수업을 하는 이유는 동기가 선하면 결과도 선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동기는 선하지 않았으나 결과가 이득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 그 부분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고 삶의 다양한 선택에 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과정이 필요해서였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목숨이 위험할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목숨을 내놓을 만큼 선한 마음은 아름답지만, 결과는 둘 다 죽음에 이르게 한다면 이 부분은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변에 튜브를 대신할 기물을 찾아서 활용하거나, 수영을 할 수 있는 제3의 인물의 도움을 청하는 대안을 찾아야 너도 살리고 그도 살릴 수 있다는 피드백을 한 것이 그 학생에게는 모욕적이었던 모양이다.

 

저 편지가 씐 답안지를 받고 나도 긴 편지를 써서 답했다. 저 학생이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연락 닿으면 그때 이야기 나누며 밥 한 번 같이 먹고 싶다.

내 수업을 듣고 뭔가 배우고 생각하고 그것으로 남과 대화하게 되어서 재밌다는 표현을 해 준 이 학생의 서술형 답안은 문제에서 제시한 정답은 아니었지만 자기 생각을 적어서 내 수업에 관해 표현해 줘서 고마웠다. 이 바닥에서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것은 이런 거였다. 그립다....... 2018, 2019년도의 그 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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