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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3>

오천 원짜리 행복

by 자 작 나 무 2023. 10. 29.

 

2023-10-28

딸이 옆자리에 앉아서 삼천포로 오가는 길에 나를 가스라이팅 했다. 작년에 오가면서 본 모 휴게소 복권방에 들렀다가 가자는 거다. 더러 복권을 사기도 한다는 딸내미 친구와 협공으로 나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지폐가 없다고 했더니 딸내미 친구가 지폐를 꺼내서 빌려주고, 딸이 계좌이체로 친구에게 만 원을 준다. 토요일 오후에 복권 사기 위해서 국도변에 있는 복권 판매점에서 줄 서서 기다렸다. 2등 당첨되면 올겨울에 그 돈으로 셋이서 베트남 여행을 가기로 했다. 신나서 따발따발 떠들며 오천 원짜리 즐거움을 나눴다. 딸내미 친구는 2등 되면 우리랑 제주도 여행에 가는 비용을 내기로 했다.

 

로또와 즉석 복권까지 산 두 아가씨가 어찌나 신나 하던지 결국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인데 아까운 줄 모르고 썼다. 어떻게 적당하게 거절할 분위기는 아녔다.

 

딸이 산 복권은 숫자 두 개가 맞았고, 그 줄에 숫자 세 개가 +1, -1을 반복하며 거의 맞아 들어갔다. 딸이 저녁에 흥분해서 복권 찍은 사진을 내게 보냈다. 한 끗 차이거나 두 끗 차이거나 당첨 안 된 건 맞다고 했지만 어떻게 번호 다섯 개가 희한한 조합으로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는지 흥분할만했다.

 

 

 

삼천포 음식점에 밥 한 끼 먹으러 나선 아침 외출이 길어졌다. 딸 친구를 집에 데려다주고 그 근방에 있던 마트에 들러서 필요한 물품을 사면서 간단하게 둘이서 저녁으로 먹을 음식도 샀다.

 

가을색이 완연한 캠퍼스 벤치에서 저녁을 먹었다. 코로나 19가 시작된 해에 입학해서 대학 생활이 이도 저도 아니게 흘러가서 억울하다고 했다. 몇 해는 학교에 더 남아서 학교 생활을 해야 할 것처럼 이제 편하고 익숙해진 이 공간에서 나가기 싫다는 거다. 어떤 감정인지 알 것 같다.

 

마트에서 산 겉절이 김치와 곁들여 저녁까지 먹고 집에 돌아왔다. 내가 집에서 학교까지 딸을 데리러 갔다가 삼천포로 빠졌다가 다시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까지 돌아가는 길이 꽤 멀다. 기운 빠진 상태로 저만 쏙 빠져서 기숙사로 들어가 버리지 않고 같이 그렇게 밥 한 끼 먹어줘서 고마웠다. 

 

시험 끝나고 우리가 함께 할 일을 의논하고 새로운 계획도 세웠다. 삶이 이어지게 할 이유를 한 가지씩 만드는 거다. 비록 복권은 당첨되지 않았지만, 잠시 셋이서 당첨금으로 함께 여행 떠날 생각에 신나고 기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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