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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3>

'개천의 용'

by 자 작 나 무 2023. 11. 23.

 

2023-11-23

 

주말에 종종 읽던 책 들고나가서 놀다 오던 우리 동네 바닷가 테라스에 도착했을 땐 그리 늦은 시각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그 시각에 이미 달이 떴다. 바다를 향해 열린 테라스 같은 데크 위에 놓인 벤치는 한동안 나만의 야외 카페로 사랑받은 곳이다.

 

그 데크 아래에서 사는 '냐옹' 가족이 비 온 뒤에 잘 있는지 보러 갔던 이달 초에 우연히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릴레이 하듯 한 권을 다 읽기 전에 다른 책이 또 내 손에 들어왔고, 최근엔 또 다른 책을 얻었다. 누가 권해도 읽다가 시시하고 재미없으면 몇 장 읽지 않고 책꽂이에 방치한다.

 

이렇듯 독서 편식이 심한 내가 틈틈이 바쁜 중에도 읽게 되는 건 내 고민과 관심사에 솔깃한 자료와 공감하는 내용이 많은 까닭이다. 

 

 

 

의외로 집중해서 읽게 되는 책이다. 이런 정책 제안서 종류는 탁상공론이나 하는 자들이 이름을 과시하려고 내는 책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 편견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야말로 뻔한 일과에 쫓기며 내가 보는 우물 크기의 하늘밖에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반성하게 됐다. 

 

이 학교 저 학교 해마다 떠돌면서, 가장 약한 고리로 시키는 일은 마다할 수 없는 처지에서 겪은 현장의 문제를 아프게 몸으로 기억하는 내게 더 큰 그림을 생각하게 했다. 빈약한 뼈대에 소신만으로는 견디기 힘든 현실을 끝내 바로잡고 큰 강물로 흐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하게 했다. 

 

각계각층에 이렇게 좋은 사람, 훌륭한 인재가 알알이 보석처럼 자리 잡고서, 이 험난한 세상을 멸망으로 가는 벼랑 끝에서 간신히 버티게 하는 거였다. 이젠 간신히 버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더 힘 있게 안전망을 설치하고 결코 쉽게 물러서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이 그 길을 선택하게 시선을 모으고 뜻을 모아야 한다. 

 

단순히 교육 정책을 입안하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라 연결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책을 선물해 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선물 받지 않았으면 읽지 않았을 테고, 이 세계에서 깊이 뿌리내린 내 불만과 불신은 더 오래 나를 괴롭혔을 거다.

 

내가 하지 못한 많은 공부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료들에게 권하고 싶다. 다 읽고 나면 친한 동료들에게 선물해야겠다. 

 

 

인구 6만밖에 안 되는 미국의 작은 도시에 저렇듯 훌륭한 시스템을 갖춘 학교가 있다는 게 부러울 따름이다. 우리 주변의 교육 여건과는 한참 동떨어진 것 같아서 속상하기도 하고, 아쉽고 부러운 생각이 절로 드는 부분이다.

 

고교학점제가 지향하는 다양한 수업을 개설할 수 있는 공간과 인력이 충분한 질 높은 공교육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면 끝없이 반복되는 신분 세습제 같은 사회의 잔인함에 대대손손 인생을 좀먹힐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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