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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3>

4년 만에 목욕탕에 다녀왔다

by 자 작 나 무 2023. 12. 3.

2023-12-03

 

2019년 겨울, 그 이후로 한 번도 목욕탕에 가지 못했다. 2020년 초에 시작된 코로나19로 목욕탕에 가는 것이 큰 죄악이나 되는 듯한 사회 분위기에 코로나 감염의 온상인 듯 인식하게 되었다. 같은 사무실 옆자리에 앉아서 근무하던 젊은 동료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도 문상도 못하게 했다.

 

해 지나면 스물넷이 되는 딸이 다섯 살 되던 해 가을에 이사 와서 여태 이 집에서 살았다. 벽은 바람이 막히는지 구분도 안 되는 오래된 낡은 건물에 한 번도 손 봐주는 일 없이 월세만 받아 챙긴 이 집에선 겨울에 온풍기 틀지 않고는 샤워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기가 차다.

 

작년에 아파트에 잠시 살아보니 난방을 거의 하지 않아도 추위를 거의 느끼지 않아도 될 정도로 찬바람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겨울은 대중목욕탕 없이는 냉기를 피해 따뜻한 물에 씻는 것조차 어렵다.

 

한 번 입력한 불편한 문제는 그간 그 고리를 풀지 못했다. '감염'의 온상에 다녀온 죄를 묻던 시기에 거칠게 새겨진 금지 카드를 버리지 못하고 지냈다. 이제 '독감이 옮아서 직장에 퍼뜨리면 안 되니까'로 나를 옥죄며 한 번쯤 따뜻한 물에 푹 담그고 싶었던 바람을 뒤로 미루고 미루다가 어언 4년 만에 목욕탕에 다녀왔다.

 

왜 이렇게 지독한 무게와 죄책감을 느끼게 몰아세웠을까...... 뭐 그리 대단한 임무라도 맡은 듯이. 내가 뭘 해도 세상은 아무 영향도 받지 않고 잘 돌아갈 텐데.

 

아무도 없는 목욕탕에서 마지막 손님으로 머물다가 왔다. 

냉탕과 열탕을 오가며 생각했다. 이 차가운 물이 소스라치게 느껴지면 금세 따뜻한 물에 몸을 담글 수 있으니까 냉기에 익숙해질 때까지 견딜 수 있었다. 혹한의 추위에 찬물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충분히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잠시 냉기와 열기에 몸을 담근 것이니 불안하지 않았다.

 

국가도 국민에게 그런 환경을 마련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잠시 힘든 상황이 되어도 어떻게든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하여 위기에 빠져서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 기댈 언덕이 되어줘야 하지 않나? 그 정도도 못 할 거면 고달픈 삶에 내몰린 자들에게서 거둬들인 세금은 낱낱이 토해내서 그들의 삶을 구하는 데 쓰게 해야 지. 

 

 

*

목욕탕에서 고작 내가 한 생각이 이런 거였다. 그간 경험한 갖가지 이상한 시리즈가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묘했다. 이 길에서 샛길로 빠져서 세계 여행이나 다니다가 사라지고 싶은데, 과연 이다음 길목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나도 모르게 언젠가 내가 설계한 삶의 궤도대로 가고 있는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물이 주는 위안을 받은 것만으로도 이렇게 잠시 마음이 풀리는구나..... 살아있는 동안 저버릴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실낱 같아도 나누고 또 나누어야 한다는 게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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