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1
월요일.
어제 김장했다고 김치를 가져가라던 친구집에 오늘 퇴근길에 들르기로 했었다. 그런데..... 오후에 생긴 머리 아픈 일이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얼마 남지 않은 이 동네 일은 또 나를 끔찍한 월요일의 수렁으로 안내했다. 내일 여행을 떠나게 된 친구네 막내딸을 만나서 잘 다녀오라고 용돈이라도 주고 인사했어야 했는데......
힘들어서 집으로 와서야 생각이 났다. 통화하고 해야 할 일은 했지만, 오랜만에 그 집 막내딸 얼굴을 보고 왔더라면..... 그 집 막내가 건네주는 김치를 받아왔더라면...... 오늘 내 삶이 다르게 마무리 됐을 텐데...... 지하로 꺼져들어가는 듯 눈앞이 흐려진 빗길에서 주저하다가 집 근처까지 와버렸다.
뒷좌석에 던져놓은 우산을 꺼내기도 싫고,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싫었다. 깡통 위에 툭툭 떨어지는 빗소리가 더 굵어진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날, 감정이란 것은 얼마나 거추장스럽고 불편한가.
진짜 내 인생의 영역에 챙겨야할 것은 뒷전으로 밀린다.
12월이 아직 20일이나 남았고, 그 사이에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은 또 생길 수 있다. 느슨해졌던 마음의 끈을 단단히 묶고 이 수렁에 더 깊이 발목이 빠지지 않게 걸음을 잘 옮겨야겠다.
내가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라도 내가 감정적으로 피폐해져서 이번 생을 끝내게 된다면...... 일기에 차마 옮기지 못한 '학교'에 얽힌 일 때문일 거다. 상담한 의사와 내 딸 외엔 모르는 일. 글로 기록하지 않고 울면서 딸에게 의사에게 때론 어떤 동료에게 조각조각 쏟아낸 그 동네에서 겪은 일이 하루하루 나를 무너지게 했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견디고, 잊고..... 다시 내 인생을 찾고..... 차분해진 뒤에, 가라앉은 뒤에 조목조목 따져물을 거다. 이렇게 쓰고 잠들면 잊는다. 이 정도를 악몽이라고 표현하기엔 약하지. 이제 월요일은 두 번 남았다.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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