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4
봄비 같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목요일
목욕탕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날 물속에 푹 잠겨서 안테나를 꺼버리는 거다.
온탕은 미지근하다. 체온보다 1도 정도 높은 온탕이 미지근하게 느껴져서 44도로 데워놓은 열탕에 들어갔다. 곧 껍데기가 익겠다는 느낌이 확 들기 일보직전에 냉탕으로 건너간다. 들어가는 순간 으스스한 느낌만 견디면 그리 차갑지 않은 냉탕에서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어언 4년 만에 목욕탕에 다시 가게 되었다는 일기를 쓴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닌데 그 사이에 세 번째 갔다. 집에서 샤워를 못해서 목욕탕에 가는 게 아니다. 단순히 씻기 위해서 가는 수준이 아니라 따뜻한 물에 담그고 물이 주는 위안을 받는다.
오늘은 냉탕과 열탕을 몇 번 오가면서 몸과 마음에 생겼던 자잘한 찰과상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냉탕에서도 흥얼흥얼, 열탕에서도 흥얼흥얼 나도 모르게 계속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느 순간 내 콧노래가 머릿속에서 나는 게 아니라 소리를 내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혼잣말, 콧노래가 오해 사기 좋은 수준으로 시전 되는 터라 살짝 신경 쓰여서 잠시 멈췄다. 그런데 냉탕에서 고요해졌다가, 열탕에서 온몸이 말랑말랑해지니까 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혼자서 한참 콧노래를 불렀다. 기분 좋으니 절로 나오는 걸 어떡해. ㅋ
형광색 우산을 듣고 만화처럼 콧노래를 부르며 고개를 까딱까딱 룰루랄라. 그 동네에 주차할 데가 없어서 한참 먼 곳에 주차해서 거기까지 걸어가면서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간 내 몸이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어제 홍샘이 건네준 김치통을 냉장고에서 꺼내서 상대적으로 간이 덜 된 줄기 부분을 잘라서 아삭아삭한 맛에 한참 먹다가 어쩐지 라면을 같이 먹어야 어울릴 것 같아서 뒤늦게 라면을 끓였다. 어릴 땐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맛없는 것도 있구나 싶을 만큼 라면 맛은 시시하다.
생굴 사다가 굴전이나 부쳐먹고 싶었지만 늦은 시각이라서 참으려고 했는데..... 엉뚱한 걸 먹었다. 이번 주말에 돌아오기로 했던 딸은 한 주 더 귀향을 미뤘다. 이제 홀가분하게 일주일 정도 친구들이랑 실컷 놀다가 오라고 했다. 이번 주말부터 집에 돌아와서 이삿짐 정리하기로 했는데 이사는 일주일 늦게 가면 된다. 캠퍼스를 떠나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공간과 시간이 그립고 아쉬울 거다.
어디에서나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우리가 어느 순간 어떻게 이별하더라도 늘 내가 응원하고, 사랑한다는 것 잊지 말기를. 우리 내년엔 더 행복하게 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