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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4>

분홍색에서 연두색으로

by 자 작 나 무 2024. 3. 1.

2024-03-01

이틀 작업한 결과물. 딸내미 방에 넣을 수납장, 내 방에 넣을 수납장 두 가지 페인트칠하고 바니쉬로 코팅하는 것까지 완성했다.

이 분홍색 합판 수납장은 처음에 만들 땐 나뭇결이 보이게 연하게 칠해서 썼다.

젯소 발라서 깔끔하게 흰색 페인트로 칠하고 앞부분은 연두색으로 발랐다. 아크릴 물감을 흰색 페인트에 섞어서 원하는 색깔을 만드는데 딸내미 방에 넣은 수납장 색이 조금 짙은 게 계속 신경 쓰인다. 내가 원하는 색은 저 색이 아니었는데 피곤해서 그냥 칠했더니 2% 부족하다.

 

 

이틀 움직이고 나니 오늘은 내 몸이 좀비로 변한 것 같다. 느리고 잘 움직이기 힘들다. 거실에 나가니 내가 해야 할 일이 천지에 널렸고, 방에 들어오니 저 수납장에서 꺼낸 물건을 다시 정리해야 하는데 손이 가지 않는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은데 욕심이다. 쉬라고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계속 무시하고 조금만 괜찮아지면 막 쓰니까 몸이 이 모양이다.

 

오랜만에 하늘이 하늘색 같다. 딸은 방에 들어가면 먹을 때 외엔 잘 나오지 않는다.

 

어젯밤에 아무래도 들고온 짐을 다 넣을 자리가 없다는 부분에서 계산이 안 되니까 작은 방 두 개짜리 집에선 둘이 침실을 같이 쓰고 방 한 칸은 짐으로 채우는 게 최선책이라고 딸이 말한다.

 

"나, 다 큰 딸 끼고 자고 싶지 않아. 너도 어른인데 네 방이 있어야지."

라고 말했지만, 나도 내 방이 필요하다. 둘 다 책상이 필요한데 책상을 공유하기엔 우리 삶에 책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양보할 수 없다. 아무리 자식이어도 이제 다 컸으니 '따로 또 같이' 외엔 안 되겠다. 딸이 대학 가고 난 뒤에 혼자 몇 해 살면서 익숙해진 나만의 공간이 여전히 필요하다.

 

딸과 삶이 분리되었던 그 몇 해 사이에 제대로 연애라도 한 번 해봤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진작에 넓은 도시로 이사해서 혼자 살았으면 좀 달랐을까? 하나마나한 허튼 생각에 헛웃음이 샌다. 

 

나도 저 수납장 변신시키듯 말끔하게 페인트칠이라도 해야 할까 보다. 똑같은 물건에 색칠만 했을 뿐인데 새것 같다. 

 

 

*

고향에 있는 친구들 보고 싶다. 

봄꽃 피는 동네에 가서 환하게 핀 꽃길도 같이 걷고 싶다.

바다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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