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2
동네 도서관은 오후 6시까지만 한다면서 5시 반쯤 되니 딸이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안친 밥이 끓어서 새 밥 푸고, 오후에 준비한 반찬에 채소 듬뿍 넣고 도토리묵 무침까지 저녁상에 올렸더니
"오늘은 맛집이네. 진짜 맛집에 가면 밑반찬이 맛있잖아."
칭찬에 약한 팔랑귀, 저녁 먹고 기어이 멸치 액젓 사러 마트에 다녀왔다. 이미 배추를 절여놨으니, 김치를 담그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멸치 액젓 사서 배추겉절이 무치고 나니 누워야 할 시간이다. 갓난쟁이 딸 업고도 김치는 담가 먹어야 하는 줄 알고 김장하던 내가 김치 안 담가본 지가 어언 20년은 넘었다. 그런데 20여 년 만에 김치를 담그니 딸이 의아한 눈으로 본다. 기억 속에 없던 장면이니까. 온갖 종류의 김치를 다 담가 먹었다는 건 으레 하는 말인 줄 알았나 보다. 그간 둘이 얼마나 먹겠나 싶어서 번거롭게 김치를 담그지 않고 주면 얻어먹고, 사 먹었다.
찹쌀 풀 쑤지 않고 저녁에 한 밥 한 숟갈 넣고 양파와 과일 갈아 넣고 담갔더니 깔끔하다. 겉절이만 하면 섭섭할까 봐 삼겹살 몇 줄 사 왔다. 입맛 까다로워서 맛없으면 안 먹는 타고난 미식가인 딸과 다시 시작한 동거. 내가 다시 무수리가 되는 삶은 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어느새 '엄마'라는 자리로 자세 전환하고 있는 게 아닌가. 배추겉절이를 해서 내가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수육 먹고 싶다던 딸내미 말을 흘려듣지 못해서 수육과 같이 먹기 좋은 겉절이도 담근 거였다.
"겉절이를 이렇게 담그니까 칼국숫집 해도 되겠어. 칼국수만 끓이면 되잖아."
내 딸은 내가 해준 음식이 맛있으면 이런 식으로 칭찬하고, 나는 그 칭찬에 매번 홀랑 넘어가서 다음에 더 맛있는 걸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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