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전

2024-03-16

오늘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에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은데도 깊은 잠이 들거나 쉽게 잠들지 못했다. 뒤척거리다가 몇 번은 휴대폰으로 일정한 주파수의 음이 나오는 채널을 열어놓고 잠이 슬쩍 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다가 아침을 맞았다.

 

충전기 전원을 연결해 놓고 잠들었는데, 아침에 깨고 보니 휴대폰은 거의 방전 상태로 충전율 5% 미만이었다. 내 몸도 매일 일과 끝나고 잠들었다가 깨기는 하지만 제대로 충전이 안 되는 모양이다. 깊이 푹 자고 때론 일하지 않고 쉬고 빈둥거리기도 해야 될 정도로 몸이 지쳤는데 계속 부리니까 마지못해 하루 단위로 굴러다니는 정도다.

 

먹어도 충전이 안 되고, 잠을 자도 충전이 잘 안 된다. 일을 줄일 수 있으면 좋은데, 손 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잘 견뎌야 한다.

 

옮겨온 뒤에 많은 것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내 몸은 조금 더 천천히 시간을 두고 잘 관리해야 되겠다. 거의 방전 상태로 내 몸과 마음이 시달리고 아팠던 뒤여서 적정선으로 에너지가 차오르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다. 주변 환경이 달라지고 일터에서 대하는 사람이 달라지니 자주 사소한 것에도 감사함을 느낀다. 이제 좀 나 같다. 이것도 감사하고 저것도 감사하고.

 

그곳이, 그들이 나와는 참 결이 안 맞는 것이었을 뿐. 더 오래 참고 견뎠으면 지금보다 더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을 텐데 이만하기 다행이다.

 

요즘 자주 행복하고, 많은 것에 감사하다. 다만, 계속 체력이 달리고 몸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내 일상을 유지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대충 하면 되는 일은 대충 하지 못하고, 전체를 관망하기 위해 하나씩 내 것으로 다시 정리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조금 충전된 힘은 거기에 쓰고 나면 나를 돌아볼 여력이 없다.

 

지난주까지는 음식 장만도 조금씩 해서 배달 음식 한 번도 먹지 않고 잘 지냈는데, 오늘은 충전 게이지가 더 아래에 있고, 해야 할 일은 많다. 뭐든 하기 싫지는 않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어렵다. 다 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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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수업을 열심히 들어주는 학생도 감사하고, 그 시간에 자리를 지키고 누워있는 학생도 감사하다. 그 아이가 그 시간에 학교에 와서 옮겨다니는 수업 교실 찾아와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자니까 얼마나 다행이야. 밖에 나가서 들어오지 않으면 어디 가서 뭘 하며 그 시간에 빠졌는지 걱정하게 될 텐데. 거기 있어주는 것만으로 칭찬해 줘야겠다. 이런 생각을 전하고 다음엔 조금 나은 시간을 만들어보자고 잘 달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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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기운이 돌아올 때마다, 내가 아는 좋은 분들 모두 건강하시고 원하는 행복한 삶을 잘 살아가시기를 기원하고, 지구에서 일어난 전쟁이 빨리 종식되어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회복하기를 기원한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런 평범한 일상에 감사함을 느낄 때마다 그조차 누릴 수 없는, 강탈당한 현실을 뼈아프게 견디는 동족인 인간 세상의 평화를 기원한다. 

 

더 많은 이들의 생각과 에너지를 모을 수 있게,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더 잘 하기 위해 더 건강해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