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정도 지나고 보니 동네 길도 좀 알겠고, 어디든 갔다가 돌아갈 곳이 통영에 살던 그 집은 아니라는 걸 어느새 몸도 확실히 받아들인 모양이다.
겨우 그 선을 넘길 즈음부터 몸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당연한 거였다. 한때 너무 힘들어서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맛도 느끼지 못하던 때가 있었던 것에 반작용처럼, 먹지 않아도 될 만큼의 음식을 들이붓듯이 먹었다. 그렇게 먹는데 살이 안 찔 수는 없지.
소화가 썩 잘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내 몸은 또 그때로 회귀할 것이 두려운 것처럼 눈치를 보며 뭐든 집어삼킨다.
특별한 상황이니까 어떻게든 참고 적응해야 한다는 협박(?) 끝에 금세 죽을 것 같던 몸을 끌고 열심히 살았다. 이제 적응 좀 했다 싶으니 슬슬 꾀가 나는 모양이다. 마트에서 싱싱하지도 않고 가격도 그저 그런 몇 가지 생선을 보고 다양한 해물이 흔하고 싱싱해서 눈 돌아가던 고향 동네 시장을 떠올렸다.
하다못해 동네 마트에서도 싱싱한 해물을 좋은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이 그곳에 살아서 얻은 행운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갑자기 미친 듯이 그 동네 마트로 달려가고 싶었다. 주말에 친구 불러내서 보리밥 한 그릇 나물에 비벼서 같이 먹고 공원이라도 한 바퀴 돌며 수다 떨던 평범한 일상이 그리워졌다.
친구가 없다는 게 이런 거다. 풍화리 친구 생각이 종종 난다. 보고 싶다. 아무 말이나 막 해도 가려서 듣고 내 편이 되어서 이런저런 조언해 주던 친구와 약속 없이도 집 근처에 볼 일 때문에 나왔다고 전화하면 쪼르르 달려 나가던 때가 그립다.
여기선 친구를 어디서 어떻게 만나서 사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퇴근하면 기운 빠져서 집에 와서 눈만 굴리다가 잠들기 일쑤다. 오늘은 친구 없는 동네에서 백일 넘게 버티고 생기는 묘한 후유증이 가슴에 고랑 하나 만들어서 기우뚱기우뚱한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쓸데없는 소리 써서 남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잡담이라도 좀 써야겠다.
*괜찮은 척 하다가 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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