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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3>

태풍 '매미'

by 자 작 나 무 2003. 9. 18.

 

 

 

12일
서울에서 동생이 왔다고 집으로 오라는 전화를 받고도 비를 핑계로 방안에서 나가지 않고 있었다. 며칠 방안에 갇혀 있던 아이를 생각해서 이웃집으로 마실을 나갔다.

사흘 만에 문밖에 나온 탓인지 바람이 거세지고 있으니 집에 가자고 종용하는 내 목소리가 높아지는 걸 듣고도 아이는 조금만 더 놀자고 자꾸만 보챘다. 한참을 실랑이 끝에 겨우 손목을 붙들고 그 집을 나섰다.

가져온 우산을 쓰지 못할 정도로 바람이 세졌다. 정말 태풍이 오긴 올 것인지 아침에  그렇게도 잠잠하던 하늘은 어떻게 변할지 그 기세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란해 보였다.

비가 굵어지고 바람이 드세어지는 걸 보고서 문단속을 하고 일찌감치 저녁을 챙겨 먹고 나니 이내 엄청난 바람 소리와 함께 정전되었다. 굵은 초 한 자루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서 어둠 속에서 뒤적거려봤다. 과연 기대한 대로 초가 있어 가스레인지를 켜서 불꽃을 옮겨 붙였다.

바람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혹여 저 폭우와 바람에 이변이 생겨 집이 무너지거나 유리가 깨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모든 것은 자연의 이치니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두려운 마음을 단념시키고 촛불을 켜놓고 아이랑 샤워하고 자리를 펴고 나란히 누웠다.

그렇게 잠든 자리에서 죽어도 평화롭게 죽을 사람처럼 담담한 심정으로 약간은 긴장감이 드는 시간을 이겨보려고 애썼다. 어둠 속에 들려오는 빗소리와 바람 소리가 무섭다고 내 목을 조이듯 끌어안는 아이를 나도 모르게 더 꼭 끌어안게 했다.

그렇게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주인집 아저씨가 문을 다급하게 두드렸다. 물이 차올라오고 있으니 하수구를 막으라는 것이다. 얼결에 문을 열어보니 마당에 물이 종아리를 넘을 만큼 차 있었다. 눈으로 물이 차오르는 걸 확인한 순간 갑자기 하수구로 물이 역류해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부엌이 삽시간에 물바다가 되었다. 너무 순식간의 일이어서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씻고 개운한지 옷을 입지 않고 잠들겠다는 아이를 혹시 알 수가 없으니 입고 자자고 옷을 입혀 놓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한 순간, 이내 이웃집 이층으로 피신을 하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얼 챙겨야 좋을지 몰라 허둥대다 수위가 급격히 차 올라오는 걸 보고 아이만 안고 현관을 빠져나왔다. 문을 연 순간 해일로 넘어온 바닷물이 집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하수구로 역류하던 물이 불어 방안으로 밀려들었다. 급류에 휩쓸려 신고 있던 신발이 어디론가 달아나고 아이를 물에 젖지 않게 위로 끌어올려 안고 다리가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 물길을 헤치고 마당을 가로질러 이층집 계단으로 옮겨 가야 했다. 급류에 떠밀려온 나뭇조각과 이상한 파편들에 살이 찢기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를 무사히 옮겨놔야겠다는 생각과 물에 휩쓸려 그대로 넘어갈 것 같은 공포감에 통증은 순간뿐이었다.

이층으로 이어진 계단까지 물이 제법 차 있었다. 비는 바람과 함께 거세게 내리쳤고 공포에 질린 아이는 얼마나 세게 내 목을 끌어안았는지 질식할 지경이었다. 마침 비어있던 이층집 현관문을 열고 아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곤 그대로 물이 방안으로 파도칠 생각에 황급히 다시 그 물길을 뚫고 집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펴놓았던 이불을 책상 위로 올리고 아이에게 갈아입힐 옷 한 벌, 내 옷 한 가지를 추슬러 손에 쥐었다. 미처 책상 위로 올리지 못한 얇은 이불 두 개를 둘둘 말아 안고 다시금 현관문을 열었을 땐 물이 허리께로 차올라 걸어갈 수가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황토물에 지독한 악취가 풍겼다. 그 어둠 속에서 악취에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이불을 머리 위로 올려서 이고 옆집 계단을 타고 이층으로 가는 계단을 간신히 옮겨탔다.

아이는 공포에 질린 채 다시 나를 끌어안았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 챙겨온 이불을 깔고 아이를 눕히고 보니 좀 전에 샤워하고 갈아입은 옷이 온통 다 젖어 아랫도리가 축축했다. 촛불을 켜놓고 옷을 갈아입으려는 순간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아이 넷과 어른 둘이 현관문으로 들어섰다. 이웃집에서 방안까지 물이 차서 나처럼 몸을 피해 온 것이었다.

옥상으로 올라갔다가 이층집 베란다로 옮겨타고 와서 그들의 옷은 말짱했고 나는 그 축축하고 악취 나는 옷을 어쩌지를 못해 머뭇거리다 가져온 옷을 갈아입고서야 그 이상한 분위기에 적응하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아이랑 둘이 몸을 피해온 후에야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어린 딸이 울지 말라고 나를 달래주었다. 공포감을 견딜 수 없어 울음이 터지려는데, 마침 그들이 왔다. 딸은 사람들 속에 아이들이 많으니 무서운 것을 잊고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불과 10여 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물이 어디까지 차오를지 좀 전에 그 기세로 여기까지 물이 차진 않을까 하는 지나친 우려에 몸이 와들와들 떨리는 것을 견뎌보려 제대로 충전시키지 않아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휴대폰을 열심히 눌러보았다. 이미 그 일대의 전화는 다 불통이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엄마한테까지 전화를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여동생, 화실 언니..... 차례로 다 눌러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내 전화는 서울에서 등록한 것이어서인지 발신은 가능했다.

서울 친구들에게 연신 전화를 해보았지만 아주 늦은 시각도 아닌데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누군가 아는 사람의 목소리라도 들어야 그 불안한 순간을 넘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다지 편하게 전화를 할 만한 곳도 마땅치 않았지만, 그 와중에 생각난 친구들은 평소와 달리 그렇게 수없이 전화를 눌러도 받지를 않았다.

불안하니 신경이 발끈해지고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서운하고 화가 났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일제히 그 번호를 정리할 것이라는 모진 생각까지 해낼 정도로 그 순간의 심기는 뒤죽박죽 그 자체였다.

한 시간가량 배터리가 다 될 것을 걱정하면서 내 전화도 불통이 될 것을 걱정하면서 그렇게 되기 전에 누군가와 통화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끊임없이 어딘가에 발신을 하다 보니 문득 한 사람과 통화연결이 되었지만, 막상 목소리가 들리니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너무 무서워서 전화했다고 말했지만, 그는 추석맞이 술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굳이 그에겐 현실이 아닌 일을 내가 현실로 겪고 있다고 해서 하소연한다는 것이 너무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에 몇 마디 인사로 전화를 끊었다.

뭐가 뭔지 사람의 일이란 게 이렇게 별것도 아닌데 참 복잡하고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인지 짜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공포심과 불쾌함이 곁들여지니 스트레스 수치가 극도로 올랐고 그 순간 생각해낸 것이 기도였다. 사람이 위안이 되지 못할 바엔 이 화나고 두려움을 조장하는 내 내면으로 들어가 보는 게 좋겠다는 극단의 순간에 나온 발상이 나를 안정시켜주었다.

9시가 넘으면서 만조가 최고치에 다다르고 그 최고치를 정점으로 바닷물의 수위가 내려갈 것이라는 정보를 얻었다. 내가 그렇게 애타게 눌러댄 전화를 누군가 받아서 그 이야길 미리 전해 들었다면 그 두려움은 훨씬 덜했을 텐데 역시 멀리 있는 친구는 가까이 있는 이웃보다 못 하다는 생각을 굳게 해줬다.

10시가 넘어서야 조금씩 물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마당은 다리를 깊이 적시지 않고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여서 더 기다려보는 수밖엔 없었다.

강릉에서 명절을 보내러 시댁에 왔다는 아주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11시가 넘어서 이층을 빠져나갔고 아이랑 둘이 남은 어둠 속 텅 빈 집 이층은 여전히 무서웠다.

아이를 달래서 재우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마당은 어디선가 밀려든 냄새나는 토사와 쓰레기더미 나무토막 오물로 가득했다. 맨발로 마당을 가로질러 가면서 질퍽거리는 느낌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휴대폰 액정을 열어 그 파란 빛을 조명 삼아 시야를 비추어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얻어서 손에 쥔 초에 불을 붙였다. 폐허가 된 방안에 둥둥 떠다니는 슬리퍼 한쪽을 건져냈다. 물이 빠지면서 부엌에 가득 쌓인 기름과 오물 섞인 흙을 씻어내느라 한참을 바둥거리다 보니 이층에서 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날이 밝아져서 그 광경을 아이랑 함께 보는 게 더 끔찍할 것 같아 문을 열고 들어서서 처음 보게 되는 공간이라도 치워놓으려는 것이었다. 겨우 부엌 한쪽을 대충 추슬렀는데 아이가 내가 없는 걸 알고 깬 모양이다.

유리 조각에 찔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아이를 달래서 끌어안고 토닥토닥 달래서 재우고 나니 손가락이 근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약간의 기도를 하고 난 후엔 마음이 느긋하다 못해 장난스러워져서 이 참혹한 현실이 꿈결 같아 그대로 지금의 심정을 옮겨 놓고 싶었다.
 
다시 내려가 노트와 펜을 찾아 올라오기엔 이미 몸이 너무 지친 탓에 발작적으로 움직이고 싶어 하는 손가락을 달래서 겨우 잠들 수 있었다.


13일

얼마나 잤는지 새벽까지 부엌에 쌓인 토사를 치우느라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했음에도 날이 밝아지니 눈이 번쩍 뜨였다. 전화는 죄다 불통이었고 여전히 정전상태였다. 물이 들지 않은 이웃 아파트에 아이를 맡기고 청소를 하러 집으로 돌아왔다. 다리가 후들거려 무엇부터 어찌 손을 대야 할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높은 곳에 올려두어 젖지 않은 전기밥통 안에 식어있는 밥 한 공기를 퍼서 선 채로 김에 싸서 배를 채웠다. 집안에 물이 들지 않아 말짱한 이웃집에 앉아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청소를 시작했다.

오~~ 신이시여! 내가 가장 아끼는 컴퓨터는 무사했다. 컴퓨터가 젖을까 봐 그 위에 덮어두었던 이불도 무사했다. 다만 바닥에 두었던 책이랑 아이가 쓰던 물건과 옷가지며 싱크대 안에 두었던 작은 가전제품들만 물이 들어가서 그나마 큰 피해는 없는 듯싶었다.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한낮 태양은 밝고 뜨거웠다. 골목을 빠져나가서 도로를 쳐다보니 해일로 수위가 육지보다 높아진 틈을 타서 뭍으로 올라와 도로를 점유한 배와 물 위를 떠다니다가 표류해서 뒤엉키고 쳐박힌 자동차들이 어젯밤 물의 공포가 어떠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바다 건너편 도로변 바닷가에 수십 톤짜리 유조선 한 대가 물이 빠져 수위가 얕아져 오도 가도 못하고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그 희귀한 광경을 놓칠세라 얼른 카메라를 챙겨 들고 나와 사진을 찍어댔다.

집에 물이 들지 않은 집은 전화도 멀쩡했다. 평소에 연락하지 않던 엄마한테 전화했다. 사라호 태풍 때보다 물이 많이 들어서 집이 해수 오물 사우나를 즐겨서 냄새가 진동하노라고 뉴스를 전하고 나니 몇 달씩 우리 집 근처에 오시지도 않던 분이 집으로 찾아오셨다.

추석에도 전화 한 통 없이 찾아가지도 않았던 것을 '매미' 덕분에 전화할 맘이 생겼고 그 바람에 몸이 불편하여 움직이기를 꺼리시던 분이 집에 찾아와서 나 혼자 벌여놓은 청소 거리를 주섬주섬 함께 치워주시는 것이다.

'추석맞이 대청소를 안 했더니 청소 좀 열심히 하라고 이렇게 방안까지 홀랑 적셔주시는군...'
조물주의 횡포를 그리 해석했더니 어머니는 기가 막히신 지 허허 웃으셨다. 종일 방 안에 있던 물건들을 덜어내고 씻어 말리느라 분주했다.

해수가 파도처럼 덮쳐오면서 하수와 뒤섞이고 이웃집 기름탱크며 자동차 기름, 주변 조선소에서 쓰던 독한 기름까지 뒤섞인 데다 내가 사는 방 옆 창고에 있던 주인집 정화조까지 터져서 복합된 바닷물이어서 그 악취는 세제를 풀어서 씻고 세제까지 곁들여도 덜어지질 않았다. (정말 똥물 세례 그 자체였음)

지금도 이 방에선 그 냄새가 가시지 않아 알레르기성 비염을 앓는 나는 종일 재채기를 하고 있다.


14일

어제 오후 늦게 들어온 전기. 컴퓨터를 얼른 켜서 점검해보니 말짱하다. 그걸로도 일단 반은 건진 셈이라고 여기고 버릴 것은 버리고 씻어서 쓸 수 있는 것은 씻어 건졌다. 다시 눈을 씻고 살펴보니 옷장이며 서랍장 안에 들어 있던 옷이 악취 나는 물에 젖어서 말이 아니었다.

이웃집 세탁기 대부분이 침수 피해로 돌아가지 않았지만 우리 집 세탁기는 감전의 위험수치가 높아진 것만 빼곤 성능엔 별 이상이 없어서 종일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못 해 쩔쩔매는 이웃집 빨래까지 무사히 마쳤다. 해수 오물 사우나를 한 방안에 옷장을 들어내 줄 장정 하나 없어 어제 이웃집 사람들은 다 꺼내서 말리던데 난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쌀자루가 젖어서 젖은 부분을 처리하고 터진 쌀을 깨끗이 씻어 먹지 못하고 버리지도 못할 처지였다. 어제 그 박한 시간에 떡까지 만들어서 이웃에 돌렸건만 어째 주변에 아는 사람 중에 남자라곤 없는지......

쉽게 부탁을 못 해서 어제 종일 다른 일만 했는데 오늘 이 좋은 볕에 저걸 처리 못 하면 앞으로 영영 치우지 못할 터라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겨우 초빙한 골목 안 젊은 덩치들의 힘을 빌려서 큰 가구를 들어내고 서랍장, TV까지 다 들어내고 보니 바닥이 말이 아니다.

물기만 말리면 어떻게 써볼까 했던 생각 자체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정말 정화조가 터졌던 게 확실한가 보다. 이 악취..... 물이 찼던 자리까지 스며든 심한 얼룩과 숨도 못 쉴 정도의 악취가 또 나를 발끈하게 했다. 어제 종일 치우고 또 오늘은 더한 것을 몸으로 때워야 한다니......

해질 때까지 자리를 걷어내고 물로 닦아내고 닦아내기를 반복하고 한숨 돌리려는 순간 이번엔 하수구가 막혀서 마지막 남은 기운까지 다 빼놓는 것이다.

내일 저 방이 다 마르면 억지로 눈 가리고 아웅 하듯 닦아내고 누운 이 방을 다 들어내서 씻어내야 한다. 내 허리와 어깨에 남은 힘이 있다면.... 밖에 내놓은 TV를 다시 들여놓고 몸을 뉘어야겠다.

스펙타클한 자연재해 드라마는 조금 지대가 반반하고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겨우 털끝만 건드리고 빈민촌만 휩쓴 것을 보면 그도 사람을 가리는 모양이다. 이런 동네는 이렇게라도 싹 쓸어버려야겠다는 고약한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괘씸하다.

이 골목 안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다지 부유하지 못한 사람들인데 궁색한 살림살이를 도로에 내다 말리는 모습이 참 가슴이 아팠다.

나도 어차피 별 다를 바 없이 쌀이 다 젖었다고 누가 밥 굶을까 봐 새 쌀로 바꿔다 줄 것도 아니지만 그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궁핍한 살림에 새 살림살이를 장만할 형편이 안되니 정말 못 쓰게 되어 버려야 할 것도 씻어서 다시 써보려 하는 것 같다. 담수가 아닌 기름과 해수에 쓸린 것은 제구실을 못 하니 버리는 게 상책이란다.

동사무소에서 방을 도배할 비용이나 자리 깔 비용이라도 챙겨주지 않으면 이대로 누울자리도 변변찮게 악취에 끊임없는 재채기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게 조금은 나를 우울하게 한다.

자연재해라 누구를 탓할 것도 못 되지만 수도권을 강타할 조짐이 보이는 태풍은 사전방송과 단속도 철저하더니 만조시간과 태풍이 다가올 시간이 일치할 경우 해일의 피해는 불 보듯 뻔하다. 그 예측 시간과 전후를 가늠하지 못한 불찰이 무지한 서민들의 탓만은 아닐 텐데 누운 자리에서 물에 휩쓸려 목숨까지 위협당할 상황이었는데도 그런 위험이 있을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 나는 못내 괘씸하고 서운하다.

수도권 외 지역, 소위 말해 변방은 문화와 의료혜택 불모지로서의 불편함 뿐만 아니라 같은 세금을 내고도 수도권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확실히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기분이 피해를 보고 느끼는 오해일 뿐일까?

매미의 참극이 빚어진 그 날 밤 아찔했던 이유는 도로가 수장되었고 폭우와 바람으로 헬기도 뜰 수 없는 상황에 가만히 앉은 자리에서 똥물에 수장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허술한 시나리오라도 써서 귀띔해주지 않았다. 평소엔 친분을 쌓기를 갈망하던 친구들이(내 사정을 알 리 없었겠지만) 정말 한 마디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해서 좀처럼 하지 않던 전화를 돌렸던 순간 그들은 다른 즐거움에 취해 나를 돌아볼 생각이 없는 이들이었다는 것에 대한 실망감까지 더해졌다.

나 역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이 필요할 때만 나를 찾고 그리워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추측이 아니라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것. 서경 중심적 행정의 관례가 은근한 차별을 해온 것이 또한 추측이 아니라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다 터지고 나서 크게 떠들어보아야 오물 해수 목욕을 한 동네 구경시켜주는 꼴밖에 더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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