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0
요즘 새로 지은 아파트엔 에어컨이 내장되어 있다는데, 이 아파트는 그렇지 않다. 준공한 지 몇 해 지나도 아무도 들어와서 살지 않은 새 아파트여서 깨끗하고, 마을 전체가 깔끔하다. 처음엔 이 동네 전반적으로 너무나 인위적인 풍경이어서 정 안 붙겠다고 말했는데 이곳의 장점에 집중해서 정 붙이려고 애쓴다.
전에 살던 집엔 차례로 산 벽걸이 에어컨이 두 대 있었다. 한 대는 이사 하면서 버리고 왔고, 딸이 고3일 때 새로 산 에어컨은 버리기도 팔기도 애매해서 들고 왔다. 설치비 어언 25만 원이나 들어서 조금 더 보태서 새것을 사는 게 나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거실은 시원한데 안방까진 시원하지 않아서 더위 많이 타는 나는 결국 내 방 침대를 두고 거실에서 토퍼 깔고 살게 됐다. 여름 다 지나갈 때까진 이렇게 거실에서 난민(?)처럼 살게 되겠다.
퇴근하면 완전히 지친 상태로 겨우 몸만 끌고 와서 드러눕기 바쁘니 책상에 앉을 일이 없다. 화장대를 따로 둘 공간이 없어서 책상을 화장대 겸용으로 쓰다 보니 아침에 화장할 때 의자에 앉는 게 전부다. 그래서 더 노트북 놓고 일기 쓰는 시간도 피곤함에 묻히고 줄어들게 된 모양이다.
엊그제 삶아 놓은 고구마 두 개를 데워서 먹고 그대로 드러누워서 잠들 것 같았는데 씻고 보니 배고파서 잠이 달아난다. 그간 너무 위가 늘어나서 먹는 음식량이 많아져서 일부러 한 끼 건너뛰려고 하는데 처음은 쉽지 않다. 아침 시간은 바빠서 거의 굶다시피 하고 점심 급식은 고등학생에 맞춘 고칼로리 식단의 음식을 양껏 먹는다.
급식소에서 식판에 담아주는 푸짐한 음식을 남김없이 다 먹는다. 지치고 배고픈 상태로 앉으니 쉴 새 없이 바쁘게 숟가락질하고 몇 번 씹지도 않고 음식은 그대로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오늘은 점심으로 나온 쌀국수가 너무 맛있어서 한 그릇 더 먹고 싶었다. 쌀국수를 즐기지 않는 사람을 위해 추가 밥과 김을 제공하는 식사 메뉴여서 쌀국수 양이 넉넉하진 않았다. 그래도 후식으로 준 빵까지 먹어서 이미 배는 충분히 찼다. 그래도 식탐이 생겨서 놀랐다.
중간에 힘들거나 배고플 때 먹으려고 싸갔던 고구마 두 알이 사무실 냉장고에서 하루 묵었다. 그걸 집에 다시 들고 와서 초저녁에 먹었다. 고구마 두 개가 한 끼 식사로 충분한데 저녁에 많이 먹는 습관이 들어서 그건 간식으로 치고 저녁은 굶은 것으로 생각하니 계속 내 배는 억울하단다.
이 간사한 머리를 어떻게 속일까 궁리하며 몇 시간 버텼다. 피로해서 눈이 붙을 것 같은데도 잠을 밀어내는 식탐을 달래려고 일부러 앉아서 일기를 쓴다. 오늘 저녁만 잘 견디면 내일은 조금 달라지겠지. 이제야 지쳐서 졸린다.
열흘 뒤에 방학이지만,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양의 생기부를 써야 하는 큰 숙제가 기다린다. 늘 그랬지만, 이번에도 쉽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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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읽고 싶었던 책은 몇 장 읽지도 못했다. 주중엔 일이 몰아치게 많아서 바쁘고 매번 지친다. 하루하루 겨우 산다. 내일 일은 내일 할 수밖에 없는 빡빡한 일상의 반복, 학기말이 되니 해야 할 일도 많고 체력도 점점 바닥을 보인다. 나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 여럿이 지쳐서 아프고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어쩌면 내가 이만하면 잘 버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힘들다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오지만 아직 병원에 가서 드러눕진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