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3
딸이 초저녁에 내내 자더니 밤늦게 일어나서 늦은 저녁을 먹는다. 새로 사 온 식자재는 오후에 파 한 단 사러 나가서 콩나물 한 봉지 사 온 게 전부다. 이미 그동안 자주 마트에 들락거리며 사다 나른 식자재가 작은 냉장고에 넘친다. 그렇게 사다 놓으면 딸이 알아서 잘 챙겨 먹을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늦은 저녁을 먹으며 일주일 동안 제대로 음식을 먹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퇴근하고 지쳐서 나도 대충 먹고 그대로 잠들어버리곤 했다. 자다가 깨서 씻고 다시 잠들 정도로 힘든 일주일이었다. 여느 때보다 과일을 종류대로 사다 놔서 부족한 점이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혼자 있을 때 귀찮아서 제대로 챙겨 먹지 않은 모양이다.
그나마 입에 맞는 반찬이라도 한두 가지 만들어주면 그걸로 밥을 먹긴 했던 모양인데, 지난주엔 내가 만든 음식이 한 가지도 없었다. 소화도 잘 안 되고 먹기가 싫다고 해서 그냥 그런 줄로만 알았다. 오늘은 달걀말이, 콩나물국, 콩나물 무침. 달리 음식 만들 재료를 사 오진 않아서 그것만 만들었는데 그 반찬만으로도 밥을 맛있게 잘 먹는다.
주중엔 바쁘고 피곤해서 신경 쓰지 못한 것이 하나씩 보여서 아침부터 구석구석 걸레질하고, 청소 좀 하고 나니 하루가 짧아진다. 그다음에 한 것이라곤 파 한 단 사러 나간다고 마트 갔다가 영수증엔 이십만 원 넘게 찍혔는데 뭘 샀는지도 모르겠다. 식탁 위에 아직 씻지 않은 체리가 한 통 있고, 대용량 무농약 콩나물 한 봉지는 삼천 원 남짓이었는데 고작 그 두 가지만으로 이십만 원? 이렇다 할 물건을 산 것도 아닌데 요즘은 시장 좀 보고 오면 이십만 원 정도 찍힌다. 장 서너 번 보면 얼추 백만 원.
도대체 왜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다. 집에 뭘 대단한 것을 들인 기억은 없고, 과일이라도 좀 먹어보자고 과일 몇 번 사 온 게 전부인 것만 같은데 물가가 너무하네. 월급 받으면 지난달에 쓴 카드값으로 다 사라진다. 차 할부금, 기타 등등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까지 후불제 인생에 월급은 통장에 숫자로 찍혔다가 고스란히 어디선가 가져간다. 그야말로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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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찍 깼다가 다시 잠들고, 오전에 밖에 나가려고 옷을 갈아입었는데도 피곤해서 다시 쓰러져서 누웠다. 조금 충전해서 청소하고, 조금 충전해서 시장 보고, 조금 충전해서 음식 만들었다. 다 하고 돌아서니 휴대폰을 차에 두고 안 가져왔다. 어쩔 수 없이 지하 주차장에 내려간 김에 밖에 나서서 동네 산책이라도 할까 했는데 어쩐지 귀찮다. 그렇게 나갔는데도 건물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집으로 들어와 버렸다.
방에 있던 노트북과 모니터를 꺼내서 연결해서 영화 한 편 보면서 거실 한편에 묵혀뒀던 실내 자전거를 꺼내서 탔다. 이게 무슨 운동이 되겠나 생각했는데 영화 보는 동안 슬슬 움직였는데도 몸에 열이 올라서 에어컨이 고장 난 줄 알았다. 그것도 운동이라고 힘들어서 졸린다.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읽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일주일이 지나버렸다. 몇 줄, 혹은 몇 장이라도 읽으면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로 시간도 체력도 달린다. 그래도 도서관이라도 가지 않으면 그마저도 못하게 될까 봐 신경 쓰인다. 이렇게 아는 듯 모르는 듯 시간이 흘러서 더 빨리 늙어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