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3
세종시에 속하지만 행정수도 중심지로 개발된 지역은 생긴 지 오래된 곳이 아니어서 동네마다 있는 유서 깊은 맛집은 없다. 그런데 세종시 조치원읍에 가면 '돈스, 몽마르트르, 이바돔' 3대 돈가스 맛집이 있다. 올봄부터 차례로 시간이 생길 때마다 조치원 돈가스집에 찾아가 봤고, 오늘 이바돔에 다녀와서 조치원 3대 돈가스집을 다 돌아보게 됐다.
1. 돈스 : 양 많고 맛있는 경양식집
2. 몽마르뜨 : 지하에 오래된 호프집 같은 경양식집, 돈가스 양이 너무 많아서 놀랐고, 뜻밖에 우리 입에는 치즈 올린 스파게티가 너무 맛있어서 기억에 남는 집
3. 이바돔 : 시인이셨다는 가게 주인의 아버지께서 지으셨다는 이름 이바돔은 '대접할 음식'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라고 한다. 1984년에 문을 열었고, 오늘 우리가 가서 돈가스를 아주 맛있게 먹고 왔다.
몽마르트르에서 너무 맛있게 먹은 묘하게 끌리는 촌스럽지만 맛있는 파스타 생각에 말을 꺼냈다가 이바돔에 가보게 됐다. 내 딸은 맛집에 끌리는 성향이어서 가보지 않은 괜찮은 맛집 정보를 흘리면 간혹 넘어온다. 오후에 가면 재료 소진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는 글을 읽고 서둘러 점심 먹으러 찾아갔다.
튀김옷이 두껍지 않고 청양고추를 적당히 넣어서 깔끔하게 매운맛이었다. 돈가스를 반으로 잘라놓고 오늘 딸과 둘이서 한 조각이라도 더 먹으려고 포크질을 하는 바람에 한참 웃었다.
"엄마가 갑자기 먹는 데 속도를 내서 내 입에만 맛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았어. 1인 1 돈가스 주문 했어야 했어. "
조치원역 앞 골목에 자리한 돈가스 맛집 이바돔
작년에 선물받은 기프티콘 카드에 잔액이 남아 있어서 동네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오후에 매장에 들어갔을 땐 그리 많지 않았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 갑자기 사람이 많아졌다. 식은땀이 나고 속이 울렁거리고 눈이 간지럽고 눈이 부시기도 하고 뭔지 모르게 표현하기 복잡한 불편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도무지 견딜 수 없이 피곤해져서 얼른 돌아왔다.
딸은 커피를 즐기지 않아서 카페에 가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 오늘은 짧은 외출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맛있는 것 먹고 편안하고 기분 좋아서 매일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아무 데도 쫓기지 않고 이렇게 살고 싶다고. 조용하고 깨끗한 이 동네의 정주환경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고 꼭 이 동네에 붙어서 살고 싶다고 만족감을 표현했다.
삶은 가끔, 우리가 과거에 만족했던 것들을 낯설게 느끼게 한다. 한때 편안함을 주던 일상은 종종 어딘가 모르게 균형을 잃은 듯하다. 더 이상 변화를 갈망하지 않지만, 어딘가에 미묘한 결핍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열흘 남짓 지나고 나니, 그다음 해야 할 일이 마치 뒤에서 나를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일에 쫓기는 일상에서 조금은 벗어난 듯하지만, 여전히 남겨둔 과제가 마음속 어딘가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다. 학기말까지 마무리하겠다고 했던 일들이 아직 남아 있고, 내 안의 감시자처럼 그 일들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마치 내가 무슨 반역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그 일들은 나를 몰아세운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일을 끊지 않고 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스며들지만, 그래도 쫓기지 않으니 눈은 조금 더 편안해진 것 같다.
고향에 있는 친구 집에 가서 손수 해주는 밥도 먹고, 하루이틀 쉬면서 수다나 실컷 떨고 싶다. 하지만 거리가 멀고, 길도 막힐 테고, 친구는 가족도 많아 내가 그리 반가운 손님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결국 마음을 접는다.
그런데 다음 달에는 한 친구가 고향에서 나를 만나러, 그 동네에서 대중교통이 닿는 이 지역 근처까지 찾아온다고 한다. 나를 기억하고, 일부러 찾아주는 친구가 있다는 게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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