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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4>

창연정에서….

by 자 작 나 무 2024. 9. 11.

닭다리살 사놓은 것을 꺼내어 후추를 탁탁 뿌려놓고, 딸내미 시켜서 새로 깐 마늘 몇 알을 다졌다. 간장에 맛술, 참기름, 설탕, 생강가루를 조금씩 섞어서 양념장을 만들고 대파를 큼직하게 몇 대 썰어서 준비했다.

가지 한 개를 큼직하게 어슷 썰어서 전분을 살짝 묻히고, 튀김가루를 갠 것에 진간장을 조금 넣어서 푼 다음, 마른 가루 묻힌 가지를 묽은 반죽에 담갔다가 기름 넣고 달군 프라이팬에 먼저 튀기듯 구웠다.

가지 튀긴 팬에 조금 남은 기름을 닦아내지 않고 그대로 큼직하게 썬 대파를 듬뿍 넣고 슬슬 볶다가 양념에 잠시 재웠던, 닭다리살을 한 점씩 펴서 구웠다. 적당히 익은 뒤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얼추 고기가 익었을 때, 굴소스를 조금 넣고 한 번 볶아서 마무리.

계획 없이 순간순간 떠오른 대로 볶아낸 고기 요리가 입에 맞았는지 딸이 밥을 맛있게 먹었다. 밥 먹을 때마다 신선한 채소를 마땅히 먹을 게 없어서 미니 오이를 사다가 몇 개씩 씻어서 잘라놓으니 어쩐 일인지 그건 잘 먹는다.

당근도 같이 놓으면 그건 먹지 않겠다고 딱 잘라 말한다. 그럴 줄 알고 오이만 놓긴 했다. 당근 냄새나지 않게 맛있게 볶는 방법을 연구해야겠다. 어떤 김밥집에서 주문한 김밥에 든 당근은 내가 당근을 볶아냈을 때 나는 묘한 당근 향이 나지 않았다. 나도 어릴 땐 생오이에서 나는 묘한 향이 거북해서 양념에 묻힌 오이만 먹은 적도 있으니, 딸이 거북해하는 당근 향이 뭔지도 이해한다.

얼마나 오래 우리가 늦은 아침상을 차려서 함께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같이 한 끼라도 먹을 수 있을 때, 기분 좋게 맛있게 한 끼 식사를 나눌 수 있게 메뉴 선택에 고민 좀 해야겠다.

집에 늘어져 있다가 몸을 쓰지도 않는데 두 끼 식사를 과하게 열심히 챙겨 먹게 되어서 변수를 만드려고 숲에 왔다. 더 먼 숲을 몇 곳 찾다가 기운이 충분히 나지 않아서 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찾아왔다. 어두워지기 전에 분주한 새소리가 이 시간대에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힐링 포인트다.  

창연정에 홀로 앉아 유유히 흐르는 금강을 굽어보며 목덜미에 와닿는 신선한 바람을 즐긴다. 곧 한바탕 쏟아질듯한 뿌연 시야에 이미 비가 내리고 있다.



가방에 우산을 넣어오지 않아서 이만 일어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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