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3
종일 하는 일도 없이 하루가 지난 것 같은 건, 무엇보다도 하루의 시작이 점심나절부터 시작되는 탓일 거다. 아침에 깼다가 다시 잠들기 일쑤고, 깨면 점심때다. 그제야 아점을 먹고 그간 돌아보지 않던 집안 살림 좀 하다 보면 해가 진다. 매일 새로운 음식을 만들고 먹고 정리하는 것만 해도 평소에 주말 외엔 하지 않던 일이어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몸은 피곤해진다.
오늘 꼭 하려던 일 중에 미루고 미뤘던 한 가지. 만들어서 쓴 지 족히 10년은 된 것 같은 머리핀에 이음새가 떨어져서 언젠가 글루건을 꺼내서 꼭 고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걸 할 여유가 없었다. 시간의 여유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한참 쉬고 편안해져야 비로소 돌아봐지는 게 있다. 그래야만 눈에 보이는 게 있다. 급하지 않다고 생각한 일상의 많은 것이 그렇게 매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로 인해 우선순위가 밀린다.
일에 쫓길 때, 내 인생이 꼭 밥벌이만을 위해 뛰는 경주마처럼 느껴져서, 경주를 위해 기운을 아끼느라 소소한 일상의 요구를 뭉개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은 아니라고 여겨도 그렇게 해야만 사회생활에서 해서는 안 될 실수를 하진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자주 우선순위가 밀린 자잘한 일이 깨알같이 많다.
글루건 찾아서 전원 꽂은 김에 새 머리핀도 하나 만들고 싶었다. 두어 달 전부터 네이버 쇼핑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여태 사지 못한 머리핀 사진을 펴놓고 뭔가 비슷하게 큼지막한 머리핀을 만들었다.
아래에 있는 납작하고 작은 핀은 10년쯤은 썼을 거다. 양면테이프와 글루건으로 접착해 놓은 부분이 두어 달 전에 떨어져서 쓰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에야 다시 손봤다.
딸내미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머리 방울이나 리본을 사려니 너무 비싸서 재료 사다가 종류대로 실컷 만들어서 원 없이 다양한 것 머리에 붙이고 다니게 해 줬다. 그때 사서 남은 재료를 여태 보관하고 있었다. 딱히 요즘에 유행하는 멋진 리본은 없지만 대략 조합해서 새 리본 핀을 하나 뚝딱 만들었다.
이걸로 약간은 기분 전환이 된다.
낮에 운동화 끈을 새로 끼면서 마음대로 잘 안돼서 속상했다. 머리도 굳고, 손끝도 굳어서 내 몸도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하필이면 그 운동화 끈 끼는 구멍이 작아서 자리마다 끈을 끼우는 게,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다. 운동화 끈 끼우는 것으로 그렇게 진땀이 날 줄이야.
나이 들어서 변화하는 것에 조금씩 적응하는 중이지만, 가끔 그 변화에 속상할 때도 있다. 머리가 기억하는 것, 몸이 기억하는 것 두 가지 다 조금씩 먹통이 되어서 멍해지는 순간, 조금 발버둥 치면 달라질 것 같은 것은 애를 써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빨리 포기하고 그걸 받아들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줄이려고 한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게 있다. 이 신체의 변화가 정형적이거나 완전히 규칙적인 것만은 아니니까 내가 어느 선까지 노력을 기울여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덜 불편한 몸으로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기꺼이 관심을 두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퇴화가 정방향이라고 인정한다. 속도는 제각각이니까 조금 천천히 늙어가게 애써보겠다.
'흐르는 섬 <2020~2024> > <20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 (0) | 2024.09.30 |
---|---|
대략 난감 (0) | 2024.09.28 |
간식 만들기 (0) | 2024.09.23 |
9.22 (0) | 2024.09.23 |
새로운 음식 만들기 도전~ (0) | 2024.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