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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4>

산책 나가기 전에.....

by 자 작 나 무 2024. 10. 1.

2024-10-01

 

오래 보아 익숙해진 친구 몇 이외에 사람을 곁에 두지 않다 보니 사람과 적정 거리 이상으로 가까워지는 것에 그다지 자연스럽지 않다.

 

사랑스러운 제자들 조차도 너무 좋아서 손잡고 딸처럼 안아주고 싶어도 잘못하면 거리의 완급을 조절 못한 것이 서로 불편해질 수도 있어서 그러지도 못한다. 한때는 나만 보면 딸처럼 사랑스럽게 안아달라는 제자들이 많아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아이들을 포근하게 안아주곤 했는데 10여 년 사이에 세상이 많이 변해서 어깨에 손도 함부로 올릴 수 없다. 기특해서 칭찬의 의미로 머리 한 번 쓰다듬어주는 것도 물어보고 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세를 바꾸다 보니 더없이 부자연스럽고 딱딱한 사람으로 변해간다.

 

멀리서 나를 찾아온 친구를 만났을 때, 반가운 마음에 길에서도 덥석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게 상대방에게나 보는 사람에게나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고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니 조심스러워서 감정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하지 못하는 부자연스러움의 틀에 갇히게 됐다.

 

내 감정이 자연스러워도 그 행동으로 인해 불편함을 누군가 겪는다면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까. 말도 그러하다. 굳이 필요한 말 외엔 하지 않으려고 가벼운 말은 감추고, 혀를 누르다보니 정작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서 어느 순간엔 하지 말아야 할 말, 혹은 내 진심이 아닌 감정적인 말을 쏟는 불상사도 생기더라. 

 

*

갑자기 오늘부터 시원해졌다. 물을 따라 한참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을 알게 됐다. 지칠 때까지 걸으러 옆동네 공원에 자주 가볼 생각이다. 여행지에선 낯선 사람들을 보고 자연스레 생긋 웃었는데, 이 동네에선 그렇게 웃으면 불편한 표정으로 오히려 쳐다보는 사람이 종종 있다.

 

오늘부터 어떤 표정을 지으며 걸을지 선택하지 않고, 나오는 대로 하고 살거다. 살짝 웃어도 무표정해 보이는 내 표정은 근육을 특별히 많이 써야 웃는 것처럼 보인다. 거울 보고 웃는 연습을 해야 할 만큼 내 표정은 에너지를 많이 써야 웃는 모습이 된다. 마음만큼 근육이 말랑말랑하지 않은가 보다. 

 

업무에 쫓기지 않으니 드디어 사소한 것으로 밀린 많은 것을 한 가지씩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아서 생긴 모서리를 조금씩 다듬어서 이왕에 더 편안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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