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8
하루 굶었다. 많은 음식을 먹어서 넘치게 한 내게 종종 이런 자극을 줄 필요가 있다. 현재는 배고픔보다 감정적인 허기가 더 크다. 온몸이 아플 만큼 목이 부어서 의사가 목안을 들여다보고는 다른 통증은 없느냐고 물었다. 생각해 보니 아픈 게 맞다. 죽을 만큼 아픈 게 아니면 그냥 견뎌버리는 습성이 이 정도 통증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 덮어버린다.
자잘한 고통에 하나하나 반응하다 보면 그대로 죽을 것 같은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고 죽지도 않으면서 산채로 견뎌야 하는 고통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냥 모르는 척하면서 넘기려던 몸과 마음의 고통을 이렇게 배고픈 것으로 완전히 눌러버리려는 내 계획을 알아챈 것처럼 서로 관심을 끌기 위해 한 번씩 고개를 내민다.
1. 나, 여기 아파
2. 나, 외로워
3. 나, 울적해
4. 나, 배고파
그래, 많이 외쳐봐라. 절실하지 않아서 그냥 다 넘길 거야.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거니까. 그냥 지나가버릴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어느 순간 생각을 바꾸려고 하겠지. 계획은 없다. 일단 하루만 굶어보는 것. 머리가 조금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면 그걸로 충분하다. 육식 없이 삶을 지탱할 즐거움이 없는 내 딸에게 채식을 권할 수 없어서 함께 먹고, 때론 저녁에 맛있는 음식과 한 잔씩 과실주도 마시는 딸의 삶을 너무 갑갑하지 않게 지지해 주는 엄마로서 할 도리를 다하려고 애쓴다.
지난주엔 금요일에 가서 줄 안 서고 성심당 빵도 잘 사 왔는데, 그 사이에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딸에겐 달달한 빵 생각이 날 때가 되었다. 주말엔 그런 곳엔 가는 게 아니다. 줄 설 자신이 없으니 주말은 잘 버티고 다음 주에 가서 밤을 넣고 만든 새 빵을 사다 줘야겠다.
맑은 날엔 낮에 집을 몇 시간씩 비워서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집에 있을 땐 쥐 죽은 듯이 조용히 방 안에서 내 할 일이나 하며 잘 버텨봐야겠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서 딸이 점점 초조해질 것 같다. 그간 잘하던 일을 쉬고 있는 나의 존재 자체가 현실적인 압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흐르는 섬 <2020~2024> > <20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산한 가을날 (0) | 2024.10.21 |
---|---|
10. 19 (0) | 2024.10.19 |
10. 18 (0) | 2024.10.18 |
맑은 날, 고복저수지 (0) | 2024.10.17 |
흐린 날, 고복저수지 (0) | 2024.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