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6
'연결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몇 해 전에 쓴 일기를 꺼내본다. 그나마 그때는 저런 열정이라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 짓는다. 좋은 감정이 드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내 착각 같은 감정만 놓고도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물불 가리지 못할 감정적인 열정이 강할 때였다.
이젠 그래선 안 될 나이라는 생각에 매번 주춤거린다.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내가 선 땅이 그대로 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뒷걸음친다. 나와 조금만 달라도 화들짝 놀란다. 사람과 섞이지 않고 살다 보니 사적인 관계로 섞이면 이성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도 알지 못한다.
갱년기라고 말하는 시기여서 내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의 작용 때문에 종종 금세 열이 오르고 감정이 먼저 솟구친다. 아무 감정도 싣지 않은 대상 앞에서는 돌덩이 같이 묵묵히 바라보는 것 외엔 아무런 생각도 판단도 하지 않는다. 적어도 감정적일 수 있다는 건, 상대방에게 내가 어떤 형태로든 사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는 뜻이겠지.
아.... 끔찍하다. 오춘기. 사춘기보다 무서운 오춘기.
오늘 혼자 카페에 앉아서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는데 창밖에 보이는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불쑥 눈물이 나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다 보니 눈화장이 지워진다. 혹시 감정이 제어되지 않아서 사람 많은 곳에서 훌쩍이게 될까 봐 얼른 자리를 정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날씨가 좋아서 또 코끝이 찡해졌다. 이런 날씨 핑계라도 대지 않으면 오늘 울먹이는 이 감정을 쓸데없이 박제하게 될까 봐 날씨 좋은데 같이 놀 사람이 없어서 슬퍼서 운다고 대충 얼버무리기로 했다.
우리에겐 가슴과 가슴을 직통으로 이어 줄 다리가 필요하다. 나만의 해피엔딩을 바라고 달리고 싶었던 결심은 무너지고 다시 무너져서, 다리도 없이 허공에 뜬 성처럼 덩그러니 남았다.
아쉽고 그립고 안기고 싶은데 모두 허상이야.....
2019. 1. 19.
외로운 사람도 많고, 외롭지 않더라도 짝을 찾거나 친구를 찾는 사람도 많다. 마음속에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공통분모 한 가지가 있다.
이젠 오히려 혼자인 것에 익숙해져서 가끔 외로운 지점만 지나면 다시 계절이 돌고 도는 것이니 굳이 누군가를 꼭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서서히 굳어진다.
나는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은 인생을 나사가 하나 빠진듯한 얄궂은 한숨 섞인 글만 쓰며 살고 싶진 않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엔 결국 서로 만나지 못하고, 이어지지 못하고 비껴가겠지만 적어도 너무 쉽게 그 과정을 포기했다는 후회를 남기고 싶진 않다.
누군가는 어느 해 여름 한 철 매주 하루아침에 오간 지난 길을 되짚어오는 짧은 여행을 하면서 휴게소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이런 먼 길을 버스를 타고 몇 번씩 자기를 만나러 와서 기다리다 잠시 얼굴만 보고 가게 했다는 게 얼마나 큰일이었는지 나중에야 알았다며 뒤늦은 후회를 하며 울었다고 한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거나 뭘 견디거나 그건 내 선택이고 내가 원해서 한 일이었다. 이제는 내가 널 보러 여기에 찾아오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냐는 말을 했다. 나는 두 번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때 나를 바라보았어야 했다.
내가 저를 한 번 보기 위해 그 먼 길을 이른 아침부터 나서서 혼자 수없이 교차하는 차창 너머의 나를 보며 견뎠던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 해 질 녘까지 강변의 그 낯선 길 위에서 하염없이 지는 해를 보고 앉아있던 나를 발견했던 그 순간에 알아봤어야 했다.
내가 얼마나 진중한 마음으로, 또한 얼마나 가벼운 심정으로 그 강변에 서 있었는지 그때 한 번쯤 생각해봤어야 했다.
무던히 인연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때론 누군가를 만나기도 했지만 우리는 이어질 수가 없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감정이 고개 들어야 가능한데 그 조합이 조금씩 어긋나서 결국 다시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날의 아름다운 강변의 노을을 기억한다. 생활반경이 집과 직장뿐인 사람의 답답한 눈으로는 볼 수 없던 세계에 나는 서 있었고, 그는 단지 일상의 단순한 지평을 벗어날 수 없는 쳇바퀴에서 가끔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어딘가에 또 그런 너와 내가 서로를 찾지 못해 이제는 단념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하늘을 보고 한숨을 내뱉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는 인연이 있으나 연결될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이 되는 거다.
* 산드라 블록이 주연한 영화 '버드 박스'를 보다가 영화 초반부에 극 중 화가인 산드라 블록이 그린 그림을 보고 동생이 주제가 '외로움'이냐고 묻자 '연결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대답을 한다. 세기말적 재앙 영화를 표방하지만, 사실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영화다.
서로를 연결해 주는 연결점, 관계..... 물리적 연결점, 심리적 연결점 둘 다 있어야 관계가 이어진다. 마음을 열어도 내 시야에 없는,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내 시야에 평생 들어올 수 없는 그대와 영원한 타인으로 공존하는 비극도 있고,
눈앞에 있어도 서로를 외면하고 마음을 열 수 없는 더 잔인한 비극 속의 주인공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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