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5
2013년 오스트리아 여행 중에 할슈타트에 있는 소금광산에 가본 적이 있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TV프로그램에서 본 그 동네를 여행 버킷리스트에 넣어뒀다가 독일을 지나서 오스트리아를 지나갈 때 하루 들렀다가 왔다.
관광객들이 할슈타트를 기억하는 대표적인 사진을 딸과 함께 보다가
"저기 정말 아름답고 좋았는데....."라는 말에 맞장구치는 딸은 이내 그 동네에서 맛있게 먹은 음식부터 떠올리며 말한다.
어림잡아 45도가 넘는 급경사로 해발 800미터 이상의 높이로 올라가는 푸니쿨라를 타고 소금광산에 오르던 날은 몹시 더웠다. 그늘만 찾다가 지쳐서 산 위에 있는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영어로 표기되지 않은 외국어 메뉴판에서 찍은 음식 중에 딸이 맛있게 먹은 치즈 파스타 맛이 먼저 떠오른다는 거다. 내 딸에게 할슈타트는 그 진한 치즈 파스타로 기억되는 곳이다. 그 외의 여행지마다 딸이 여행지를 기억하는 코드가 거의 음식 맛과 연결된다는 게 나에겐 신기한 일이다.
가끔은 어딘가에서 들은 음악과 함께 떠오르기도 하고, 문득 맡은 향기와 어우러진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기억하는 많은 것의 기준이 맛이라니 내 딸의 미각은 확실히 다른 감각보다 발달한 모양이다.
얼마 전에 감자 한 상자 값이 괜찮아서 장바구니 채로 배달해 주는 *마트에서 감자 한 상자를 사서 뭘 해 먹을까 고민하다가 샐러드를 먼저 만들었다. 그날은 길을 걷다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으깬 감자로 만든 샐러드 맛이 떠올랐다. 처음 가보는 골목을 지나서 처음 보는 반찬 가게에서 산 감자 샐러드 맛이 그 순간 문득 떠올라서 그 맛이 나는 샐러드를 만들고 싶었다.
잔뜩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핫도그 빵을 사놓고 그 사이에 끼워서 샐러드 빵으로 잘 먹었다.
어제 며칠만에 헬스장에 다녀왔더니 사지가 내 것 같지 않은 통증에 시달리며 한참 누웠다가 달걀이라도 삶아서 단백질 보충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달걀을 잔뜩 삶았다.
딸이 거실에 나오더니 샐러드 만들려고 삶았냐고 묻는다. 그냥 먹을 생각이었다고 말하고는 곧장 침대로 가서 내 몸 같지 않은 몸이 겪는 근육통을 달래다 보니 통영에 사는 친구가 오십견으로 의심되는 통증 때문에 검사받으려고 입원했다는 소식을 알려준다. 건강이 제일이지. 입맛 좋을 때 맛있게 잘 먹어야겠다.
오늘은 하숙집 할머니께서 종종 해주시던 사과 샐러드 생각이 문득 났다. 집에선 먹어본 적 없는 특별한 맛을 그 하숙집에 6년 남짓 살면서 알게 됐다. 하숙집 할머니 손맛이 담긴 음식 몇 가지는 가끔 생각난다. 미역수제비며 닭이 헤엄치고 지나간 닭곰탕까지 추억의 음식이 몇 가지 있다.
그중에 사과를 저며 넣은 샐러드는 마요네즈 외에 뭘 넣으셨는지 궁금하다. 오늘 식탁에 준비한 재료를 일부 버무려서 그때 하숙집 할머니께서 해주신 샐러드 맛이 나게 해 보느라고 사과를 비슷한 크기로 저며놓고 당근도 살짝 익히고, 감자도 저민 사과 크기로 잘라서 익혔다. 뭔가 비슷한 듯하면서도 그 맛은 아니다.
내가 종종 집에서 만든 음식 사진과 조리법을 써놓는 이유는 이것과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세상에 흔하고 많은 조리법이 있지만, 집에서 우리가 같이 맛있게 먹은 음식은 뭘 얼마나 넣고 어떻게 조리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엄마 손맛 담긴 옛날 고향 음식이 먹고 싶거나, 오늘처럼 하숙집 할머니 손맛 담긴 음식이 그리울 때 머릿속에 희미한 기억 외엔 존재하지 않으니 참고할 게 부족하다.
딸이 내 나이만큼 먹고 어느 날 문득, 옛 기억을 더듬으며 내가 맛있게 해 준 음식을 먹고 싶어지는 날이 오면, 자세히 적어놓지는 않았어도 몇 장 남은 사진과 몇 줄 남긴 글을 읽으며 그 맛을 재현하거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풀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숙집 식구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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