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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4>

삼천포

by 자 작 나 무 2024. 11. 13.

2024-11-13

 

삼천포

-남행시초 4

 

졸레졸레 도야지 새끼들이 간다

귀밑이 재릿재릿하니 볕이 담복 따사로운 거리다

 

잿더미에 까치 오르고 아이 오르고 아지랑이 오르고

 

해바라기 하기 좋을 볏곡간 마당에 

볏짚같이 누우란 사람들이 둘러서서

어느 눈 오신 날 눈을 츠고 생긴듯한 말다툼 소리도 누우나리

 

소는 기르매 지고 조은다

 

아 모도들 따사로히 가난하니

 

 

詩. 백석

 

* 츠고 : 치고 / 기르매 : 길마. 짐을 실으려고 소의 등에 얹는 안장

 

 

*

갑자기 삼천포에서 맛있게 먹었던 해물짬뽕 맛이 떠올랐다. 최근에 먹은 음식 중에 고기 누린 맛이 강한 이 동네 짬뽕 국물을 넘기면서 그 동네에 살 때 먹었던 평범한 짬뽕 국물맛과 너무 대조되어서 한 번 떠오른 다음에 문득문득 그 음식 맛이 그립다.

 

그보단 그 동네에서 알게 된 좋은 인연이 그리운 거다. 가끔 카톡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을 때 들춰보는 사진 속의 BK 샘의 환한 웃음, 밝고 건강한 목소리부터 시작하여 가끔 점심시간에 운동장 한 바퀴 같이 돌던 시각에 따스했던 햇빛의 온도까지 선명하게 떠오른다. BK 샘이 댁에서 내려주시던 향긋한 커피, BK 샘이 추천해 주셔서 혼자 어느 날 구례까지 찾아갔던 목화빵집, 사천 시장 건너편 수제 어묵집..... 많은 것이 어우러져서 떠오른다.

 

맨발로 같이 걸었던 진주 강주연못 둘레길. 내가 이성이었다면 BK 샘을 열렬히 짝사랑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맑고 밝은 에너지와 마음 씀씀이가 곱고 또 고와서 절로 빠져들게 되는 사람이다. 남쪽에 그대로 살았더라면 종종 만나서 밥 한 끼 먹고 안부를 나누며 지냈을 텐데......

 

나는 어쩌자고 이 먼 땅으로 이민 오듯 이사를 했을까 싶다. 익숙한 것에 안주하는 삶을 이어가기엔 그 땅에서의 삶도 아쉬운 게 많았다. 지금 아쉬운 것은 남쪽에서 맺은 좋은 인연들과의 물리적 거리가 너무나 멀다는 거다. BK 샘도 보고 싶고, 풍화리 친구도 보고 싶고, 나현이네 식구들도 모두 그립다. 오늘은 그리워서 가슴이 아릴 정도로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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