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5
며칠 전부터 정해진 약속이 있어서 어제부터 신경 쓰였다. 만나기로 한 변호사는 간접적으로 아는 사람이었지만, 얼굴은 처음 보는 사이였다. 전화로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긴 했으나, 얼굴 보고 한 번은 이야기하고 자료를 넘겨야 할 것 같아서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출장 온다는 오늘 낮에 거기서 만날 약속을 했다.
일 보러 오셨다는 경찰서 앞 카페에서 자료가 담긴 Usb를 넘겨줬다. 어떻든 그 일과 관련하여 고소장도 변호사가 쓸 것이고, 필요한 조언은 해주기로 했으니 이 정도만으로도 한숨 넘긴 것 같다. 경찰서에 혼자 가서 진술해야 하는 것이 다음 관문이겠다.
잠시 대화하고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 마트에 들러서 삶은 꼬막과 인절미를 샀다. 통영에선 싱싱한 생꼬막을 사서 해감하고 삶아서 요리했지만, 여기선 그런 선택은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삶아서 깐 꼬막을 샀다. 후다닥 양념장 만들어서 꼬막을 무친 뒤에 밥에 비벼서 한 숟갈 먹었더니 눈이 확 뜨인다.
생각보다 양념이 맛있다며 딸이 칭찬해 줘서 기분 좋게 한 그릇 싹 비웠다. 내일은 두부를 구워서 남은 양념장 발라서 같이 먹어도 맛있겠다. 한 끼는 어제 시장에서 산 올방개묵을 동치미 육수 부어서 깔끔하게 묵밥으로 해먹을 계획이었는데 꼬막 무침을 하는 바람에 뒤로 밀렸다.
며칠 전에 딸이 아주 맛있는 인절미를 먹고 싶다고 해서 시장에서 인절미 한 팩을 사 왔는데 그 인절미 맛이 기대 이하여서 다 먹지도 못했다. 시장에서 파는 인절미 가격과 세 배 차이나 나는 인절미를 대형마트에서 샀는데 너무 맛있다고 몇 개씩 집어먹는다. 딸이 원하는 음식을 가성비 따져서 샀다가는 돈만 날릴 때가 종종 있다. 하나를 먹어도 맛있는 걸 먹겠다는데 어찌하리~ 내 입에도 맛의 차이가 확연한데 타고난 미식가인 내 딸에게 먹힐 리 없지.
내가 그렇게 키운게 아니라 딸의 입맛은 타고난 거다. 모유 외엔 절대로 먹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해서 아무리 좋은 분유를 바꾸고 젖병을 최고급으로 바꿔도 젖병을 빨지 않았다. 네 살 먹은 아이가 조기 먹고 싶다고 해서 조기를 사다 주면 조기 먹으면서 '장어'가 더 맛있다는 말을 지긋이 눈 내리깔고 말했다.
덕분에 내가 더 노력하고 살 수밖에 없었다. 저항할 수도 비판할 수도 없이 그대로 더 잘해주고 싶은 자리에서 딸이 더 좋은 것을 항상 원해서 내 삶이 축 늘어지거나 뒤처질 수 없게 나를 진작하게 해서 참 고마웠다. 왜 그 정도로 만족하지 못하느냐고 나무라지 않고, 더 잘해주려고 노력하고 노력한 내 삶의 태도는 까다로운 내 딸 덕분에 더 굳건해진 거다.
아직 만나지 못했거나, 아직 더 깊이 이어져야 할 인연이 있다면, 이왕에 내 딸처럼 상전으로 모시지 않고 잔잔하게 사랑하고 은은하게 삶을 함께 이어갈 수 있는 이였으면 좋겠다. 하지 않던 근력 운동 좀 하고 왔더니, 지쳐서 눈도 제대로 못 뜨겠다. 이 상태로 새 반찬 만들 생각을 하니 마음은 나서는데 몸이 지쳐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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