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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4>

마음이 쓸쓸해질 때

by 자 작 나 무 2024. 11. 14.

2024-11-14

 

오늘은 역대급으로 따뜻한 수능일

수능 한파란 전설 속에 묻힐 듯한 특이한 11월 중순 날씨가 이렇게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날도 드물 거다. 이제 수능은 남의 일처럼 뒤로 넘어갔지만, 아직 국가에서 치르는 시험의 벽을 넘어야 하는 딸이 있다. 다음 주에 시험장에서 쓸 일이 있어서 손목시계 배터리를 갈아달라고 내밀었다.

 

어제 시계를 들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브랜드 매장을 찾아갔더니, 배터리가 없어서 일주일 정도 맡겨서 본사에 보냈다가 다시 찾아야 한다고 해서 시계를 그대로 들고 왔다.

 

주차장 건너편 시장 먹자골목이 눈에 띄어서 들어갔다가 시장 한 바퀴 돌아보고 나왔다. 마음이 헛헛하고 쓸쓸해질 때 종종 통영에서 활어시장에 다녀오면 사람 사는 냄새가 진하게 나서 내 삶의 묵은 고민도 같이 묻히듯 희석되곤 했다.

떡, 튀김, 올방개묵을 이 가게 저 가게 들러서 샀다. 검은 비닐봉지를 손에 주렁주렁 들고 시장에서 걷다 보니 기분이 어쩐지 좋아진다. 장날에 맞춰서 이 시장에 오는 것도 괜찮겠다. 

 

작은 게 튀김과 그 집의 별미라는 오징어 통다리 튀김을 접시에 담아서 맛있게 먹고, 올방개묵을 맛있게 먹으려면 동치미 육수가 필요해서 그것 사러 이마트에도 다녀왔다. 씻은 김치도 넣어야 맛있는데 김치 한 통 가격이 다른 마트보다 눈에 띄게 비싸다.

 

그래서 또, 김치가 좀 싼 다른 마트에도 가서 재래시장부터 시작해서 장을 세 번이나 봤다.

사지는 못하고 구경만 한다. 집이 좁아서 이젠 이런 것 사도 올려놓을 자리도 없다. 통영에 살 땐 집이 둘이 살기엔 넓어서 허퉁한 마음을 물건 사다 채우는 것으로 대신한 것처럼 사다 채우며 살았다. 대부분 버리고 이사 왔는데도 이곳에서 얻은 집은 좁아서, 먹고 입고 사는 데 필요한 기본 물품 외엔 정리도 못하고 그대로 거실 한 구석에 상자째 쌓여있다.

 

딸이 아직 어린이였다면, 묻지도 않고 이런 걸 하나 냉큼 장바구니에 담아왔을 거다. 현실적인 고민은 나만 하면 되는 거니까 딸이 행복해할 작은 물건을 사고, 그것으로 작은 행복을 느끼며 또 하루를 견디고, 한 달을 견디며 한 계절을 살아내던 지난 시절처럼 그렇게 살았을 테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 내가 아무리 애써도 딸이 원하는 만큼의 큰 행복을 보따리째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젠 저 나름의 현실 과제에 발목이 잡힌 삶 속에 있다. 현실을 지금과 같이 냉정하게 바라볼 눈이 열리기 전에 순전히 내 노력으로 만들어준 환상 같은 세계는 어릴 때나 통하는 거였다. 

 

딸 앞에서 바보처럼 울 수는 없어서 힘들어도 참고 견딜 때도 많았는데, 이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 속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은 것을 저도 안다. 이런 게 나이 들어가는 건가 보다.

 

우리 집에 있던 모든 아날로그시계가 멈췄다. 둘 다 애플워치를 차고 다니니까 계속 어딘가에 방치한 시계가 다 쓸모없게 됐다. 꽤 값나가는 예쁜 시계도 있었는데 그것도 언제 멈췄는지 움직이질 않는다. 배터리 교체하지 않아도 오래 썼던 시계 중에 태양광 충전 시계를 찾아내서 햇빛이 비치는 곳에 놔뒀다. 내일쯤 그 시계가 충전돼서 움직이면 좋겠다.

 

*

날씨 탓인지 밖에 나가기가 싫고,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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