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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4>

11. 16

by 자 작 나 무 2024. 11. 16.

2024-11-16

 

냉장고에 남은 식자재가 있는 것을 잊고 뭔가 새로 사 오면 그리 크지 않은 우리 집 냉장고는 금세 꽉 차버린다. 냉장고를 큰 것으로 사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더 큰 냉장고를 샀더라면 얼마나 사들인 줄 모르고 집안에 물건 채우듯 냉장고에 먹을 것으로 꽉 채우며 살았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딸이 그다지 즐기지 않는 채소 중에 내가 유난히 즐겨 먹는 가지 한 봉지를 두고 어제저녁에 딸이 한마디 했다. 사놓고 잊지 말라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사다 놓으면 반응이 확실히 다르다. 나만 좋아하는 것으로 냉장고 채소장이 꽉 찬 게 싫다는 느낌이다.

 

며칠 전에 가지를 구워서 소스를 끼얹어 만든 요리는 식감이 좋지 않아도 딸이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맛은 좋은데 식감이 별로라는 거다. 그래서 오늘은 가지를 구워도 형체가 사라지지 않게 굵게 토막 내서 썰고 전분가루만 입혀서 튀겼다.

간을 하지 않아도 튀긴 가지만 먹어도 내 입에는 훌륭하다.

 

대파를 넣고 볶아서 파기름을 내고 고춧가루까지 약불에 슬쩍 볶아준 다음에 양파와 마늘을 넣고 볶다가 간장, 굴소스, 알룰로스 같은 단 것을 조금 첨가해서 튀겨놓은 가지를 넣고 불에 슬쩍 덖어냈다. 후추와 깨를 뿌려서 마무리.

 

 

딸은 백미로 한 밥을 먹고, 나는 현미, 찰현미, 병아리콩, 블랙렌틸콩을 섞어서 만든 잡곡밥을 먹는다.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한 번 권한 뒤에 싫다고 하면 두 번은 권하지 않는다. 

어제 만든 양념장을 삶은 꼬막에 끼얹어서 참기름 한 바퀴 더 둘러주고 슥슥 비벼서 먹었다.

 

좋아하는 반찬 한 가지만 있으면 다른 음식은 차리지 말라는 딸 덕분에 오늘 식사는 가지와 꼬막으로 끝났다. 튀긴 가지가 입에 맞았는지 평소보다 가지를 한 개 더 튀겼는데 두 접시를 더 채워서 볶음팬에 있던 음식을 한 번에 다 먹었다. 가지가 흐물거리지 않고 바삭한 식감이 느껴져서 양념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나 뭐라나......

 

앞으론 딸과 함께 먹을 때 가지 요리는 이렇게 해야겠다. 구운 것보다 손이 더 가지만 함께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딸이 만족해하며 맛있게 잘 먹었다는 말로 마무리하는 식사 시간이 끝나고 혼자 커피를 마시며 생각해 보니 나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구나 싶다.

 

어떤 사람에겐 뭔가 받고 싶어서, 그 사람이 내게 관심과 사랑을 주지 않으면 금세 섭섭해지고, 어떤 사람에겐 뭘 어떻게 더 해줄지 고민한다. 나도 사랑받고 싶고 나도 사랑을 주고 싶지만, 그게 아무에게나 받고 싶고 주고 싶은 건 아니다. 내가 뭐든 자꾸 주고 싶은 사람을 만나서 나도 한 10년쯤 흠뻑 사랑받고 살았으면 좋겠다. 10년은 이성으로 서로 사랑하고, 이후엔 서로 의지하며 우정으로 살아보면 어떨까.....

 

여전히 그간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갈망에 시달리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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